불닭신화의 숨은 주역, 김정수 부회장
전 세계를 매운맛으로 사로잡은 '불닭볶음면'의 성공 뒤에는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의 남다른 안목과 추진력이 있었습니다.
김정수 부회장은 창업주 전중윤 명예회장의 며느리이자 전인장 회장의 배우자인데요. 일찍이 '재벌가 며느리'나 '회장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넘어, 위기의 삼양식품을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도약시킨 실질적인 경영자로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과거 부도 위기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구원투수로 직접 나선 이후 '불닭신화'를 만들어내기까지, 그의 남다른 이력이 최근 행보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습니다.
김정수 부회장 / 뉴스1
부도위기 회사 경영 참여 시작... 실무서 빛난 감각
1997년, 삼양식품은 우지파동과 외환위기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습니다. 누적된 적자로 부도 위기에 처했을 때, 김정수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0.98%에 불과했던 자신의 지분을 31.55%까지 늘려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고, 현대산업개발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여 경영권 매각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본래 결혼 후 가정주부였던 그는 시아버지인 창업주 전중윤 명예회장의 권유로 1998년 경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절박해서, 아무것도 몰라서, 그저 바닥부터 뛰면서 일했다"는 그녀의 회고는 위기 상황에서의 절실함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서울예고, 이화여대에서 작곡과 사회복지를 전공한 김 부회장은 뛰어난 디자인과 마케팅 감각을 발휘해 삼양라면 포장지를 직접 디자인하고, '갓짬뽕'과 '맛있는 라면' 등의 제품명을 직접 지을 정도로 감각있는 실력을 드러냈습니다.
불닭볶음면 시리즈 /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글로벌 히트의 탄생
김정수 부회장에게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매운 라면으로 유명한 제품을 탄생시켰다는 '아이러니함'이 있습니다.
그는 2011년, 고등학생이던 딸과 서울 명동을 지나다 불닭 매장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 많은 데서 먹자는 딸의 말에 매운 찜닭집에 들어갔는데, 젊은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맛있게 먹고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이걸 해 보자'고 생각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직원들과 전국의 유명 불닭, 불곱창, 닭발 맛집을 찾아다니며 세계 여러 고추와 페퍼소스, 멕시칸 핫소스 등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2012년 탄생한 불닭볶음면은 스코빌 지수 4,404SHU로, 신라면(2,700SHU)보다 훨씬 매운 제품이 되었습니다.
사진=인사이트
2012년 첫 출시 이후 2024년 상반기까지 불닭볶음면과 그 파생 제품들의 누적 판매량은 70억 개, 누적 매출은 4조 원에 달합니다. 특히 삼양식품 전체 라면 수출에서 불닭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를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K-라면의 글로벌 성장 주도
삼양식품의 성장세는 K-라면 전체의 수출 호조와 맞물려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 및 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2025년 1분기에는 연결기준 매출 5,290억 원, 영업이익 1,340억 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특히 주가는 지난 5월 16일 100만원을 돌파한 뒤, 7월 10일에는 장중 150만원을 넘어섰고, 현재는 다소 조정을 거쳐 130만원대에서 거래 중입니다.
증권가는 잇따라 회사의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LS증권은 삼양식품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고, 목표주가는 기존 125만원에서 175만원으로 올렸으며 신한투자증권 역시 삼양식품을 업종 내 '최선호주'로 유지하면서, 목표주가를 140만원에서 165만원으로 상향했습니다.
김정수 부회장 / 사진 제공 = 삼양식품
ESG 경영 투명성 강화와 미래 비전
김정수 부회장은 해외사업 확대와 사업 구조조정 외에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 투명한 경영체제를 마련하는 데도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 전 회장과 함께 회삿돈 50억원 횡령 유죄판결을 받았던 김 부회장은 이후 법무부 취업승인 및 광복절특사로 복권돼 경영 일선에 복귀했는데요. 이후 ESG 경영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2021년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와 감사위원회, 보상위원회,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했으며, 사외이사를 기존 1명에서 4명으로 늘렸습니다.
또 2023년 신년사에서 그는 "삼양식품이 글로벌 식품회사로 도약하고 있는 만큼 높아진 위상에 맞는 의무와 책임도 강화돼야한다. ESG 5대 전략 과제인 지속가능한 공급망 확보, 글로벌 규제대응, 노동 환경 변화 대응, 사회적 가치 창출, 저탄소 친환경 경영을 필히 숙지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2023년 9월에는 삼양라면 출시 60주년 기념 비전선포식에는 김 부회장의 장남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이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사업 방향성과 탄소 저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삼양식품
김 부회장의 대표이사 사임 후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
김 부회장은 지난 4월 지주사인 삼양라운드스퀘어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지만, 사내이사직은 유지해 이사회에는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같은 달 미국 캘리포니아 인디오에서 열린 세계적인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을 직접 방문하는 등 글로벌 현장 경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삼양식품은 코첼라와 국내 최초로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현장에 '불닭 부스'를 운영했는데, 김 부회장은 이 부스를 직접 찾아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현장 분위기를 체험했습니다.
코첼라 불닭 부스는 오픈 첫 주말부터 인산인해를 이뤘고, 세계적 아티스트와 셀럽들도 부스를 방문해 SNS 인증샷을 남기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삼양식품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것이 곧 경영의 기본'이라는 김정수 부회장의 소신에 따라, 삼양식품은 오프라인 체험과 온라인 콘텐츠를 연결한 '옴니채널 전략'을 통해 글로벌 팬덤과의 접점을 넓혀가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구원투수'로 등장해 불닭볶음면이라는 메가 히트작을 탄생시킨 김정수 부회장. 이제 그녀의 시선은 세계 시장을 향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재벌가 며느리가 아닌, 뛰어난 감각과 리더십으로, 또 발로 뛰어온 현장 경영으로 글로벌 식품 기업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김정수 부회장의 행보는 앞으로도 주목받을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