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29일(화)

"예전엔 다 도요타였는데"... 현대차에 의해 조금씩 바뀌고 있는 '동남아 도로' 풍경

도요타·혼다 지배하던 시장... 현대차의 약진 


동남아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영향력이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확대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요타, 혼다, 미쓰비시 등 일본 브랜드들이 택시, SUV, 승합차 시장을 압도하며 동남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던 가운데, 현대차는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기 어려웠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왼쪽)이 16일 현대차 현지 공장 준공식에서 아이오닉 5에 서명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를 지켜보며 박수치고 있다. 현대차 제공지난 2022년 현대차 현지 공장 준공식에서 조코 위도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 현대차


하지만 2020년대를 기점으로 이 같은 시장 구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현대차가 이 지역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며 점차 판도를 바꿔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다.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인도네시아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인도네시아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5월까지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서 총 2만 9,600대를 생산해 혼다를 제치고 4대 자동차 생산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2019년 '동남아시아 수출 전략기지'를 표방하며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현대차 공장(HMMI)이 본격 가동되면서 생산량이 급증한 결과다.


공장 가동 전인 2021년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생산량은 770대에 불과했으나, 2025년 상반기 기준 전체 생산량의 6.4%를 차지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현대차, 인도네시아 EV 충전 구독 서비스 개시인도네시아 EV 충전 구독 서비스 / 현대차


전기차 생태계로 승부수 던진 현대차


현대차는 단순 생산을 넘어, 인도네시아 전기차 인프라 확충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까지 설치된 현대차 충전기는 600개를 넘어섰고, 배터리 현지화 전략도 병행 중이다.


현지 합작사인 HLI 그린파워는 2024년 한 해 동안 약 2,010만 셀의 배터리를 양산했으며, 계열사 연대 에너지 인도네시아(HEI)는 이를 모듈·팩 단위로 조립해 공급하는 체계를 완비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추진 중인 전기차 보조금 정책과 국산 부품 의무 비율(TKDN) 기준에 부합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로 '올 뉴 코나 일렉트릭'은 TKDN 80%를 달성해 정부 인센티브를 확보했다.


현대차는 2025년 연말까지 '아이오닉 5', '아이오닉 5 N', '아이오닉 6', '코나 일렉트릭 N 라인' 등 총 5개의 신규 전기차 모델을 추가 투입해 TKDN 정책 수혜를 지속적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image.pngYouTube 'Hyundai Motor Group'


동남아 전역으로 확장하는 현대차


현대차의 동남아 전략은 인도네시아에 국한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기존의 유통 대행 체계를 넘어서 최근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현지 법인 현대말레이시아(HMY)를 설립하며 직접 진출에 나섰다.


70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지는 케다 CKD(Completely Knocked Down) 공장에서는 2025년 하반기부터 상용차 '스타리아'를 시작으로 7종의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차량이 생산될 예정이다.


태국에서도 위탁생산 파트너인 톤부리 오토와 손잡고, 방콕 인근 사뭇쁘라깐주에 전기차 조립 라인을 구축해 2026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간다.


베트남에서는 이미 현대차가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 중이다. 2017년 탄콩그룹과 설립한 합작법인 HTMV를 통해 아반떼, 투싼, 싼타페 등 주요 차종을 현지 생산하며 입지를 다졌고, 최근에는 전기차 아이오닉 5까지 투입하며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 확보 위한 마케팅 투자


250526 (사진2) 현대자동차, 동남아시아축구연맹과 함께 '아세안 현대컵™' 공식 출범.jpg현대컵의 공식 출범을 알리며 악수하는 (왼쪽부터) 키에프 사메스(Khiev Sameth) 동남아시아축구연맹 회장과 김성남 현대자동차 아태권역본부장 / 현대차


동남아에서 상대적으로 낮았던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현대차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난달 현대차그룹은 동남아축구연맹(AFF)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동남아 권역 국가대표 축구 대회의 공식 명칭을 '아세안 현대컵'으로 바꿨다.


이 대회는 '동남아의 월드컵'이라 불릴 만큼 이 지역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 이전에는 '스즈키컵', '미쓰비시일렉트릭컵'으로 명명돼 일본 기업이 오랜 기간 후원해왔다.


필리핀에서는 유명 엔터테이너들을 브랜드 앰버서더로 내세우고 있으며,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지에서는 현대차의 기술력을 활용해 정비 교육을 무상 제공하고 있다. 이는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지역사회 기여 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전히 치열한 경쟁, 그러나 가능성은 충분


현대차의 동남아 시장 확대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사진5).jpeg인도네시아 도로를 달리는 아이오닉5 / 현대차


일본 브랜드의 탄탄한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건재하며, BYD, Wuling 등 중국 전기차 브랜드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생산, 판매, 인프라, 협업까지 전방위적인 전략을 구사하며 경쟁의 틈을 파고들고 있다. 


단순한 판매 중심이 아니라, 현지 파트너와의 협력 모델을 강화하고 고용 창출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시장 안착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인구가 풍부하고 모빌리티 전환에 민감한 동남아 시장에서, 현대차의 전략은 분명히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조용한 반격'은 이제 점차 현실이 되어, 동남아 도로 위 현대차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