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유진 기자 = 대한민국의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오늘(23일) 별세했다.
과실이 많은 대통령으로 평가된 전두환 씨는 12·12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출신이다.
7년간 재임한 그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 등 신군부 철권 통치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했다는 오명을 입었다.
전씨는 그 시절 대중의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 위해 3S 정책을 비롯, 각종 달콤한 정책을 실시했다.
'3S 정책'이란 성 풍속(Sex),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독재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즐겨 쓴다는 정책의 통칭이다.
먼저 대표적인 '3S 정책'으로 평가된 첫 번째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 창설이다.
전씨는 88올림픽을 유치하고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창설하는 등 프로 스포츠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동시에 스포츠로 국민의 시선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평도 이어졌다.
두 번째는 '1980년대 에로영화 전성기'를 사실상 주도했다는 것이다. 전두환 씨 집권 초기인 1981년, 영화 상영 규제에 대한 검열이 과거보다 파격적으로 완화됐다.
당시 극장가에서는 그 유명한 성인영화 '애마부인'을 시작으로 무분별한 저예산 에로 영화가 우후죽순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야간 통행금지 폐지' 정책이다. 1982년 1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0시부터 해제된 야간 통행금지는 '개방과 자율'이라는 명목하에 시행됐다.
다만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여러 가지 성 관련 사업도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유흥가와 이에 따라붙는 조직폭력배 세력 등이 덩달아 눈에 띄게 범람했다는 전언이다.
네 번째는 '교복자율화·두발자유화'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대표적인 실책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장발단속을 폐지한 인물도 전두환 씨다.
하지만 83학년도 신입생부터 적용된 교복 자율화 역시 사복 구매에 따른 가계 부담 증가, 일부 학생의 사치, 교외 생활 지도 어려움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하며 결국 1986년 2학기부터 교복이 부활했다.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내건 전씨의 다섯 번째 정책은 '해외여행 전면적 자유화'이다.
1989년부터 이루어진 해외여행 자유화는 99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자신감과 국제화가 해외여행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며 떠올랐다.
이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의 성과이자, 19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저금리, 저유가, 저물가)으로 인한 대표적인 효과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다만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에도 '폐쇄적 체제'는 여전히 굳건했다. 모든 해외여행자를 대상으로 소양교육이 이뤄졌으며 신원조사도 무척 까다로웠다.
이 같은 정책들로 인해 얼핏 보면 전두환 정권 시절은 서민들이 살기 좋았던 시절이라는 일부 평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역행한 정치군인이라는 점 등, 씻을 수 없는 과오로 인해 국민들의 민심과 평가를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