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8일(월)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한지 한 달도 안 지났는데 세상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 대통령 기록관 홈페이지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지난달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오늘(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별세했다. 노 전 대통령 별세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전 전 대통령까지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7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오랜 동지이자 정적으로 보내왔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생이다. 이들은 1959년 미국 특수전학교에서 함께 교육받았고 1970년 베트남전에도 함께 참전했다. 


두 대통령은 동기였던 육사 11기생들을 주심으로 군대 내 비밀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했다. 전 전 대통령은 하나회 회장이었고, 노 전 대통령은 핵심 일원이었다. 


육사 생도 시절 노태우(좌, 1951년)와 육군 대위 시절 전두환(우, 1959년) / wikipedia


1979년 전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을 주도했을 때, 당시 9사단 사단장이던 노 전 대통령은 전방에 주둔하던 자신 휘하의 29연대를 후방으로 이동시켜 노 전 대통령이 서울을 장악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인정받아 5공화국의 2인자로 부상하게 된다. 


사단장에서 육군 대장으로 쾌속 지급한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장관과 올림픽조직위원장, 여당 대표를 지내면서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다. 


전 전 대통령은 이런 노 전 대통령(당시 민주정의당 대표)에게 "자네는 일생 동안 나와 함께 지낸 일등 참모장"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12·12 군사반란 직후 노 전 대통령(좌)과 전 전 대통령(우) / Wikipedia


이런 둘의 관계가 틀어진 건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직후였다. 


직선제를 통해 대통령이 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몸담았던 신군부의 딱지를 때기 위해서라도 전 전 대통령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야 했다. 


그중 하나가 '5공 청산'이었다.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1988년 3월 전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 구속을 시작으로 약 2년 동안 '5공 비리 국정'이 이어졌다. 


궁지에 몰린 전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23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강원도 인재에 있는 백담사에 들어가 은거했다. 



GettyimagesKorea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1997년 대법원에서였다. 당시 대법원 선거공판 법정에 나란히 선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손을 잡은 모습이 찍혀 화제가 됐다. 


이때 전 전 대통령은 반란수괴·상관살해·내란수괴·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다. 


특별사면으로 그해 바로 석방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행보를 이어왔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은 아들 노재헌 씨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책임을 사과했으나 전 전 대통령은 고(故) 조비오 신부 비난 등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뉴스1


한편 전 전 대통령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심폐 정지가 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순자 여사가 발견해 경찰 견호대에 연락했고 3분 뒤 도착한 경호대가 119에 신고했다. 


전 전 대통령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과 체내 칼슘 수치가 상승하는 고칼슘혈증을 앓아왔다. 


지난 8월 중순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았을 때 전 전 대통령은 "그동안 살 만큼 살았다"며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약물치료 후 병세가 꽤 호전돼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했지만 거부했다"며 "그때 '이제 힘들구나'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원래 주어진 명대로 살다가 간다고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