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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강지원 기자 =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육군 내에 있었던 비밀 사조직 하나회가 재조명됐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나회 숙청을 위해 취임 11일 만에 칼을 빼 들었던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하나회(신군부)는 박정희 정권을 유지하는데 힘을 쏟았던 군대 내의 사조직이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필두로 육사 엘리트들이 비밀리에 모이며 결성됐다.
영화 '서울의 봄'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에는 하나회가 주요 보직을 전부 도맡으며 우리나라의 실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93년 2월 하나회 숙청에 칼을 갈던 김영삼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하나회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은 방송사·신문사 사장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나는 개혁을 위한 전진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해둔다. 어떠한 경우라도 이것은 한치의 후퇴도 있을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불과 취임 11일 만에 거침없는 직진 행보를 예고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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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은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호출해 육군참모총장 등을 언제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고 '대통령이 통수권을 행사하면 언제든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자마자 해임을 단행한다.
그는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 등 특전 사령관, 수도방위 사령관을 맡고 있던 하나회 핵심들을 전격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후로도 하나회 출신 군권을 가진 임원들을 모두 쳐냈으며 취임 석 달 만에 장군 18명이 옷을 벗었다. '특수 작전'에 가까울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졌다.
그 여파는 영관급 장교까지 이어졌다. 그들의 빈자리는 비하나회 출신 인사들이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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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하나회 출신 장군들이 이에 반발하며 쿠데타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으나 그럴 때마다 김 대통령은 더 철저하게 응징했다.
이에 당시 '떨어진 별만 40개'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였다. 대대적인 숙청은 김영삼 대통령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했다"고 말할 정도로 정치적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하나회는 보직에서 물러날 뿐만 아니라 이후 진급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배제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약 1년 뒤인 1994년 4월에 공식적으로 '하나회 숙청 작전 완료'를 선언했다.
그렇게 1980년대 나라를 손에 쥐고 흔들었던 권력의 하나회는 1990년 문민정부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 채 사실상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