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5월 05일(월)

고액 체납자들에게 흘러간 수십억의 '건보료 환급금'... "성실 납부자만 호구됐다"

건강보험 체납자에게 수십억 원 혜택 지급 논란


건강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하는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장기간 보험료를 내지 않은 체납자들에게 부적절하게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2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공단 종합감사 결과에 따르면, 수년에 걸쳐 수십억 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혜택이 고액·장기 체납자들에게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건강보험에 존재하는 '본인부담상한제'는 환자가 1년 동안 낸 병원비(비급여 등 제외)가 일정 금액(2024년 기준 소득 수준에 따라 97만~808만 원)을 넘으면 건보공단이 초과분을 대신 내주는 제도로, 과도한 의료비로 인한 가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그런데, 이 혜택이 건보료를 1년 이상, 1000만 원 넘게 내지 않은 체납자들에게도 그대로 지급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gesBank


감사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고액·장기 체납자 4089명에게 총 39억 원이 넘는 본인부담상한액 초과금이 지급됐다.


지난해에만 1008명의 체납자가 약 11억 5000만 원을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체납자의 3% 수준이지만,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들의 돈으로 체납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1대 국회에서는 체납된 보험료와 환급금을 상계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보험급여를 받을 권리는 압류가 금지된다는 등의 법적 문제로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건보공단은 상계 대신 지급할 환급금에서 밀린 보험료를 공제하고 지급하는 방식으로 법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문제가 제기된 지 3년이 넘도록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아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본인부담상한제 외에도 병원이나 약국에서 실수로 진료비를 더 많이 받았을 경우 이를 가입자에게 돌려주는 '본인부담금 환급금' 제도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견됐다.


현행법상 이 환급금은 체납 보험료와 상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돌려줄 돈이 있어도 밀린 보험료가 있다면 그만큼 차감하거나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보공단 시스템의 허점으로 인해 일부 고액·장기 체납자들에게 이 환급금이 밀린 보험료와 상계되지 않고 그대로 지급된 사실이 확인됐다.


실제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2500∼2800명 가량의 체납자가 많게는 3000만 원 이상의 환급금을 받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법에 정해진 상계 원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사진 = 인사이트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사진 = 인사이트


이에 건보공단은 본인부담상한액 초과금은 법 개정을 통해 '공제' 제도를 도입하고, 본인부담금 환급금은 관련 부서 협의와 시스템 개선을 통해 상계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모든 가입자가 공평하게 부담하고 혜택을 받는 것이 원칙인데, 체납자에게 혜택이 그대로 지급되는 현 상황은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성실 납부자들의 불만이 커질 수 있어 조속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