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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캡틴의 완장은 무거웠다. 팀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 앞에서 그의 극심한 부상은 사치에 불과했다.
지난 24일 자정 반드시 이겨야 16강 진출을 꿈꿀 수 있는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2차전 멕시코와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기성용은 어김없이 왼쪽에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에 올랐다.
경기 초반부터 기성용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을 따라다녔다. 수비부터 공격까지 빈틈을 노리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다.
중계위원들의 해설에서도 기성용의 이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기성용 선수가 헤딩으로 처리합니다", "아~ 기성용의 멋진 수비입니다", "기성용 선수가 멋진 태클을 해줬습니다", "기성용 선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했습니다", "기성용 헤딩!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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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은 절실했다. 여러 경우의 수가 있긴 하지만 멕시코전을 패하면 16강 진출은 거의 불가한 상황.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바람과 한국 축구의 성장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감 사이에서 '주장' 기성용은 어떻게든 이 기회를 살려야 했다.
그러나 절실함과 달리 기성용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경기 시작부터 기성용은 오른쪽 무릎에 압박 붕대를 하고 등장했다.
앞서 세 번의 무릎 수술을 받았던 그는 진통제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또다시 불운이 찾아왔다. 후반 40분, 상대선수의 발에 왼쪽 종아리를 차이는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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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중간중간 기성용은 무릎을 두 손으로 짚고 가쁜 숨을 내쉬며 힘들어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공을 따라가며 달렸고, 도저히 견디지 못할 땐 팀닥터를 불러 파스를 뿌린 뒤 다시 그라운드로 향했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자신보단 치명적 실수로 좌절한 동료 선수를 찾아가 다독이고 위로했다.
자신이 포기하면 선수들 전체의 분위기가 흐려질 것을 우려한 주장의 책임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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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후 기성용은 "오늘 선수들이 정말 최선을 다해줬는데 제가 실수가 있어 팀원들을 힘들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또 "선수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은 정말 오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이날 기성용은 목발을 짚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염좌 2주 진단으로 독일전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비록 기성용이 독일전에서 벤치에 앉아있더라도 국민들은 그가 보여준 '주장의 품격'과 희생, 책임감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