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6일(일)

'日 강제동원 피해' 김한수 할아버지 별세... 향년 108세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 지난 22일 향년 10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습니다.


24일 민족문제연구소는 김 할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며, 고인이 1944년 8월부터 1년여 동안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소에 강제 동원되었던 피해자라고 밝혔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은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강제동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범 기업을 상대로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오셨다"고 설명했습니다.


인사이트일제강제동원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 / 뉴스1


김 할아버지는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 징용을 피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 전매지국에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1944년 8월 목재 운반 작업이라는 거짓 설명을 듣고 전매청 트럭을 타고 연안읍으로 향했다가, 이미 대기하고 있던 청년 200여 명과 함께 강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경유해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도착했고, 기숙사에 배치되어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됐던 이들의 모습 / YouTube 'media infact'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됐던 이들의 모습 / YouTube 'media infact'



열악한 식사와 생활환경, 강압적인 규율 하에서 생활해야 했던 그는 작업장에서 선박용 강철파이프를 구부리는 작업 중 체인이 끊어지면서 엄지발가락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발이 퉁퉁 부은 상태에서도 계속 작업을 강요받았습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당시 김 할아버지는 폭심지에서 3.2㎞ 떨어진 공장에서 작업 중이었습니다. 원폭 피폭으로 공장 철문 밑에 깔려 목을 다쳤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말린 오징어를 팔아 뱃삯을 마련해 밀항선을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김 할아버지는 2019년 4월 "같은 인간으로 왜 그들(일제)한테 끌려가서 개나 돼지 대우도 못 받는 인간으로 살아야 했나, 이게 참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며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올해 5월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 80년 만에 일본 기업으로부터 1억 원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현재 이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2019년 4월 4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인 김한수(왼쪽), 김용화(오른쪽) 할아버지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에 자리하고 있다. / 뉴스12019년 4월 4일,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인 김한수(왼쪽), 김용화(오른쪽) 할아버지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에 자리하고 있다.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