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120억 원대 로맨스 스캠 조직의 총책을 그대로 풀어준 당시 상황이 담긴 통화 녹음 파일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당시 대사관 측은 한국 경찰 수사관에게 총책을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설명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YTN
지난 22일 YTN은 대사관 측과 한국 경찰 수사관, 로맨스 스캠 조직 총책 강 모 씨의 대화가 담긴 통화 녹취 파일을 공개했습니다.
강씨는 지난해 11월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을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여권 연장을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대사관 직원은 강 씨에게 적색수배 사실을 알려준 후 한국 경찰과 통화를 연결해 줬습니다.
한국 경찰 수사관이 수배 사실을 알려준 이유를 묻자, 대사관 직원은 "적색 수배 여부는 제가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저희가 여권 발급을 안 해주는 이유에 대해 민원인한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당황한 수사관이 "그러면 이제 강씨가 귀국하지 않고 계속 숨어 있을 수도 있지 않냐"고 우려를 표하자, 대사관 직원은 "그건 장담 못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주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 / Facebook 'koreanembassycambodia'
더욱 놀라운 것은 대사관 측이 한국에서 120억 원대 로맨스 스캠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강씨를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것에 대해 '모양새가 좋지 않고 부담스럽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점입니다.
통화 녹취에서 대사관 직원은 "모양새가 좋지 않고. 제 발로 들어온 민원인을 대사관에서 경찰 영사가 전화해서 잡아가라, 이거는 조금 좀 부담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대사관은 강 씨의 여권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당시 통화 녹취에는 강씨가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끄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대사관에 찾아갔을 당시 적색수배가 내려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강씨는 천연덕스럽게 "아버지와 선교활동을 위해 캄보디아에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이 피싱 범죄 연루 사실에 대해 언급하자 친구에게 본인과 아내의 명의를 빌려줬다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핑계를 댔습니다.
수사관이 빨리 귀국해 조사받을 것을 요구하자, 강씨는 캄보디아에 함께 있던 아내가 연락이 안 된다고 말을 돌렸는데요. 그는 "제가 지금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일단 아내랑 좀 만나서 얘기를 해보겠다"며 확답을 피했습니다.
이후 대사관은 강씨를 그대로 보내줬습니다.
강씨는 경찰 수사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거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며 소통을 이어갔는데, 이때 아내가 현지 조직에 붙잡혀 있어 직접 구하러 찾아갔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실제 피싱 범죄에 가담한 조직원들을 알고 있다며 몇 사람의 신원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강씨는 몇 차례 더 경찰 수사관에게 연락하다 잠적했습니다.
경찰은 강씨가 조직원들의 신상을 넘기며 자신은 범죄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려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이미지 / Google ImageFx
한국 대사관은 올해 초에야 현지 경찰에 사건에 대해 알렸고, 강씨는 대사관 방문 후 약 3개월 만에 현지에서 체포됐습니다.
강씨와 아내는 석방됐다가 다시 검거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캄보디아에 강씨 부부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요청했지만, 캄보디아 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캄보디아 당국이 선정한 추방 대상자 명단에도 강씨 부부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YTN은 법무부 측이 캄보디아 법무부 차관과의 면담에서 강씨 부부에 대한 송환을 다시 한번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