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조리사들의 호소
매일 아침 학교 급식실에서는 수백 명의 학생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조리사들이 분주히 움직입니다.
뜨거운 불 앞에서 국과 튀김, 볶음 요리를 전담하는 이들의 헌신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5일 KBS의 보도에 따르면 수십 년간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린 조리사들이 최근 국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에 나서면서 그 위험성이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KBS
23년간 초등학교 급식 조리사로 일한 박 모 씨는 가슴을 찌르는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폐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박씨는 KBS에 "아기들이 너무 귀엽고 밥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아서 힘들어도 계속 일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라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조리흄: 급식실의 숨겨진 살인자
근로복지공단은 조리사 업무와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습니다.
현재까지 '폐암 산재'를 인정받은 급식 조리사는 무려 178명에 달합니다.
이들의 건강을 위협한 주범은 바로 '조리흄'이라는 발암물질입니다.
조리흄은 고온에서 음식을 볶거나 튀길 때 발생하는 유해 물질로, 장시간 노출될 경우 폐암 발병 위험을 크게 높입니다.
"튀김을 하면 2시간 반 정도 서서 그 뜨거운 데서 계속 튀겨내야 한다. 그때는 마스크도 안 쓰고 일했다. 가스 냄새도 심하고..."라고 박씨는 당시 작업 환경을 설명했습니다.
KBS
노동 강도 역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됩니다. 전국 초중고 조리사 1명이 배식을 맡는 인원은 평균 146명으로, 이는 공공기관 급식실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수치입니다. 이러한 과중한 업무량은 조리사들의 건강을 더욱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 초등학교 급식 조리사는 "내가 아파서 쉬는 것보다도, 내가 대신할 사람을 못 구해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늘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처럼 대체 인력 부족으로 인해 아파도 쉬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조리사들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최근 폐암 산재를 인정받은 급식 조리사 9명은 국가와 지자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국가가 오랜 기간 학교 급식실을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조리사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발암물질 '조리흄'의 위험성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원고 대리인인 곽예람 변호사는 "작업 환경 측정이나 특별 건강진단 등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점이 대한민국의 의무 위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5년간 폐암으로 숨진 급식 조리사는 15명에 달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소송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9월에도 충북 충주의 한 급식 조리사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매일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는 급식 조리사들. 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근무 환경 개선이 시급합니다.
학교 급식실이 더 이상 위험한 작업장이 아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되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