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청부살해 사건 허위진단서 발급 의사, 심평원 심사위원 활동
국민적 공분을 샀던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의 주범에게 허위진단서를 발급해 벌금형을 받았던 의사가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진료비 심사를 담당하는 위원으로 활동 중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의료 윤리를 어긴 의사가 의료행위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국회에서 지적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여대생 공기총 청부 살해사건' 주범인 윤길자씨(68·여)의 형집행정지를 도운 세브란스병원 주치의 박모 교수(54)가 3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김석우)는 윤씨의 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로 세브란스병원 주치의 박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교수는 류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2007년 6월부터 허위·과장 진단서를 발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3.9.3 / 뉴스1
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병우 전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 4월 1일부터 임기 2년의 진료심사평가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료심사평가위원은 의료기관에서 청구하는 진료비 중 전문의약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에 대한 심사·평가 및 심사기준 설정 업무를 담당하는 중요한 직책입니다.
2002년 여대생 청부 살인사건을 사주한 윤길자 씨 / SBS '그것이 알고싶다'
악명 높은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과의 연관성
박 위원은 2002년 발생한, 이른바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의 주범인 윤길자 씨(류원기 전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의 주치의였습니다.
이 사건은 윤 씨가 자신의 사위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의심한 여대생을 청부살해한 충격적인 범죄였습니다.
피해 여성은 사위의 사촌 동생으로 사건 당시 22세였던 이화여대생이었습니다.
윤 씨는 200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았으나, 유방암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형 집행정지를 받아 민간병원 호화 병실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을 샀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 위원은 윤 씨의 형 집행정지를 위해 류 전 회장과 공모해 허위진단서를 발급했고, 2017년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심평원은 박 위원 임명에 대해 "해당 전문과목(유방외과) 공석 발생에 따라 인력 충원이 필요했으며, 공정채용 가이드 등 정부 지침을 준수해 투명하고 공정한 채용 절차를 거쳐 최종 임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김선민 의원은 "허위 진단서로 벌금형을 받은 인물을 의사의 진료가 적정했는지 심사하는 자리에 앉힌 것은 부적절하다"며 "심평원장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즉시 해당 위원을 해임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박 위원은 김선민 의원실의 입장 표명 요구에 "기관에 임용되기 10여 년 전에 발생한 사안과 관련해, 임용된 기관의 진료심사평가위원으로서의 입장을 표명하기는 곤란하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의사로서 그동안 쌓아온 의학적 지식과 임상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전문위원으로서 맡은 바 책임과 소명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심평원을 통해 전했습니다.
국민 건강과 의료비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관인 심평원이 과거 의료 윤리를 위반한 인물을 심사위원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시민사회와 의료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