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왜장 후손들, 433년 만에 참회 위해 옥천 가산사 방문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 장수들의 후손들이 역사적인 참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합니다.
30일 청주BBS '충북저널967'에 출연한 이재표 미디어날 대표에 따르면, 다음 달 9일부터 11일 사이에 충북 옥천의 가산사에서 열리는 '광복 80주년 기념 및 한일 화해의 날' 행사에 임진왜란 왜장 후손들이 참석합니다.
쵸소카베 모토치카 / Wikimedia Commons
이번에 방문하는 인물들은 임진왜란 당시 5진을 이끌었던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17대 손인 히사다케 소마와 6진 왜장이었던 도리다 이치의 후손 히로세 유이치입니다.
이들은 10월 9일 부산으로 입국한 후, 다음날인 10월 10일 가산사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해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침략 행위에 대해 용서를 구할 예정입니다.
이들은 가산사를 방문하기 전에 금산 칠백의총을 먼저 들를 계획입니다.
금산 칠백의총은 불교계와 일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1500의총'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이곳에서 전사한 의병 700명뿐만 아니라 승병 800명을 포함해 총 1,500명이 순절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산사, 임진왜란 의승군의 역사적 요충지
옥천 가산사 전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산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시대인 720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영규대사가 의승병을 일으켜 활동했던 중요한 역사적 장소입니다.
임진왜란이 1592년 4월에 발발한 후, 조선은 연이은 패전을 겪었지만 같은 해 8월 1일 청주성에서 영규대사의 승병과 조헌의 의병, 그리고 박춘무의 지역 의병들이 협공하여 육전에서 첫 승전고를 울렸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후인 8월 18일, 충남 금산에서 권율 장군이 이끄는 관군과 연합 작전을 계획했으나 작전 연기 연락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투가 벌어져 많은 의승병이 순절하는 비극이 있었습니다.
가산사 일대는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이 의승군과 의병을 훈련하고 군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충남 갑사 영규대사 진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숙종 때에는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찰로 지정하고 영규대사와 조헌 선생의 진영을 봉안하여 제향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가 두 의병장의 영정을 강탈하고 '불온 사찰'이라며 탄압하기도 했습니다.
한일 화해를 위한 역사적 첫걸음
이번 왜장 후손들의 가산사 방문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무려 433년 만입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이 방문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베어간 조선인들의 귀와 코를 묻어놓은 '이비총'을 연구해 온 김문길 박사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김 박사는 부산외국어대 일본학과 전 교수이자 현재 명예교수로, 일본 문부성의 교토 국제문화연구소 교수이기도 합니다.
충북 옥천군 가산사 주지 지원 스님이 30일 충북도청 기자실을 찾아 '대한 광복 80주년 기념과 한일 평화의 날' 행사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가산사 주지인 지원 스님이 몇 해 전 일본 법회에서 김문길 박사를 만나 이비총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번 행사가 성사되었습니다.
원래는 왜장 후손 세 명이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한 명이 병으로 불참하게 되어 두 명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행사에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이 직접 참석하여 이재명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할 예정이며, 성웅 대한불교조계종 총무부장이 진우 총무원장 스님의 축사를 대독하는 등 종단의 여러 고위 인사들도 참석합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인 만큼 단재 신채호기념사업회와 의암손병희선생계승사업회도 참여하며, 독립운동 당시의 노래를 부르는 산오락회의 공연도 함께 열릴 예정입니다.
왜장 후손들은 행사 이후 청주에 있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소와 사당, 의암 손병희 선생의 생가 등을 방문하고, 당일 저녁 7시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공연 '자혜, 그 누구도 아닌'을 관람할 계획입니다.
다음날에는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관람하고 출국하는 일정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대표는 "가산사 행사를 출발점으로 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 또 화해의 분위기가 확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