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달리기할 때 청각보다 시각 정보를 우선 처리"
언젠가 달리기를 할 때 음악이 희미하게 들리거나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이어폰을 꽂고 조깅할 때 유독 소리가 잘 안 들려 볼륨을 높인 적도 있을 테다.
실제로 달리기를 할 때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이유가 뇌의 메커니즘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주목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26일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이승희 부연구단장 연구팀이 이러한 현상의 신경과학적 원리를 동물실험을 통해 규명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뇌가 행동 상태에 따라 감각 정보를 다르게 통합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쥐가 달릴 때는 시각 정보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가만히 있을 때는 청각 정보를 우선하여 처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는 일상에서 시각과 청각 정보를 동시에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영화를 볼 때도 화면과 소리를 함께 이해해야 내용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뇌가 이러한 감각 정보를 어떻게 결합하여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는 지금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와 교신저자(왼쪽부터 이승희 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부연구단장/교신저자, 최일송 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박사후연구원) / 사진=IBS
후두정피질이 감각 정보 통합의 핵심 역할
연구팀은 시각·청각 정보가 통합되는 뇌 영역을 찾기 위해 실험 쥐의 특정 뇌 부위를 인위적으로 비활성화하는 약물주입실험과 광유전학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후두정피질(posterior parietal cortex, PPC)이 시각 정보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영역이 비활성화되면 청각 정보를 우선적으로 처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어서 연구팀은 뉴런의 활성 정도를 측정하는 칼슘 이미징 실험을 통해 후두정피질의 뉴런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했다.
쥐가 가만히 있을 때는 후두정피질의 시각 뉴런이 청각 신호에 의해 억제되어 청각 정보를 우선 처리했다.
행동 상태에 따른 시청각 정보 처리의 유연성 / 그림=IBS
반면, 쥐가 달릴 때는 청각 신호가 후두정피질로 전달되지 않아 시각 정보가 우선적으로 처리됐다.
이러한 변화는 달릴 때 운동피질(secondary motor cortex, M2)에서 생성된 신호가 후두정피질로 청각 정보를 전달하는 뉴런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면서 발생한다.
즉, 실험 쥐가 달릴 때 운동피질에서 보내는 신호가 청각 정보 전달을 차단하여 시각 정보가 우세해진 것이다.
시청각 정보 처리의 유연성을 조절하는 신경 메커니즘 / 그림=IBS
감각처리장애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 제시
이번 연구는 특히 운동 상태에 따른 감각 정보 처리의 변화를 구체적인 신경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청각 피질 자체는 달리는 동안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해 청각 정보 처리가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별 감각의 처리 능력은 달라지지 않으며,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가 뇌에서 통합되는 과정이 행동 상태에 따라 조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번 연구는 자폐스펙트럼, 조현병과 같이 감각처리장애(sensory processing disorder, SPD)를 겪는 사람들의 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감각처리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감각 통합 능력이 저하되어 있어, 감각 정보가 뇌에서 통합되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신경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연구를 이끈 이승희 부연구단장은 "이번 연구는 감각 정보가 뇌에서 처리될 때 개별 감각 자체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이를 통합하는 방식은 행동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조절됨을 밝힌 중요한 발견"이라며, "이 연구가 앞으로 감각처리장애 치료를 목표로 하는 특정 뇌 신경회로의 작동 방식을 제시하는 데 기초적인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3월 7일 온라인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