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TV 사업 19년 글로벌 1위의 주역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 뉴스1
삼성전자 TV 사업을 19년 연속 세계 1위 자리에 올려놓은 주역, 한종희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25일 향년 63세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지난주 주주총회도 참석하고, 해외 사업장을 직접 챙길 만큼 활발히 움직였던 그였기에 업계 안팎의 충격은 크다.
그는 삼성 안팎에서 오랫동안 '코뿔소 사장'이라 불렸다. 누구보다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눈앞에 놓인 난관이 아무리 험하고 커도, 멈추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해내는 그의 모습은 코뿔소를 닮았다고 많은 이들이 말했다. 그 별명에 담긴 것은 '신뢰와 존경심'이었다.
1962년생인 고인은 1988년 인하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해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개발팀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액정표시장치(LCD) TV 개발 조직에서 기술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고, 개발실장을 거쳐 2017년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의 진면목은 2021년 말, 삼성전자의 TV뿐 아니라 모바일, 가전 전반을 아우르는 DX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발탁되며 더욱 또렷해졌다. 당시 50대 후반의 나이로 삼성전자 '투톱' 경영의 한 축을 맡은 그는, 단순한 기술 경영인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뛰는 전략가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 CES 기조연설은 '전설'로 회자돼"
2022년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삼성전자 대표로 기조연설을 맡았을 땐, 업계 안팎의 기대를 넘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속가능성, 인공지능(AI) 같은 미래 산업에 대한 삼성의 비전을 단단한 어조로 전 세계에 알렸다. CES 무대에서 반복적으로 마이크를 잡으며,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위상을 굳히는 데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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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DX부문 산하에 새로 신설된 '품질혁신위원회'의 수장으로 품질 경영 전반을 이끌었고,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회장직도 재선임돼 전자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 힘써왔다. 규제 대응, 정부와 업계 간 가교 역할, AI 산업 기반 조성 등에서 그의 리더십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왔다.
그는 떠나기 엿새 전인 지난 19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존 사업은 초격차 기술 리더십으로 재도약의 기틀을 다지고, AI 산업 성장이 만들어가는 미래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로봇·메드텍·차세대 반도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겠다"
그 말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었다. 고인은 주총 직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AWE 2025 가전 박람회를 직접 찾아 현지 시장의 흐름을 꼼꼼히 살폈다.
했던 말은 꼭 지켰던 경영인...고요하지만 깊은 울림 남겨
기술과 소비자, 글로벌 트렌드가 만나는 접점에서 늘 몸으로 뛰며 방향을 읽던 그의 태도는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았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재무 전문가가 아닌 '개발 전문가'라는 점 때문에, 업계에서 그가 이끄는 DX 부문의 기대감은 특히 컸다.
삼성전자와 한국 전자산업의 중요한 한 축을 지탱하던 인물의 갑작스런 부고에, 업계 전체가 숙연해졌다. 고인은 휴식 중 심정지로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묵묵히, 성실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으로 전자 산업의 길을 걸어온 한종희 부회장. 기술로 시대를 바꾼 리더 한 사람의 발자취는 그렇게, 고요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