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준강 기자 = 1년 4개월이 지난 고등어를 먹는 사람을 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텐가.
아마도 뜯어말리고 싶을 것이다. 1.4일만 지나도 위험한데, 1년 4개월이라니. 일수로 치면 무려 487일이다. 시간 단위로 계산하면 무려 11,688시간이다.
당연하게도 먹지 못하게 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강남 반포동 서래마을에 자리한 초밥집에서는 예외다. 이곳에 있는 고등어는 그냥 고등어가 아니어서다. 바로 '숙성' 고등어다.
고등어만 숙성된 게 아니다. 참치, 농어, 관자, 새우, 연어알, 성게알, 병어 등이 모두 '숙성'돼 있다.
이 초밥집의 이름은 '타쿠미곤'이다. 타쿠미곤의 오너 셰프는 권오준 일본요리연구회 한국지부장이다. 권 셰프는 국내 유일하게 일본요리연구회에 등록된 한국인 셰프다.
그가 속한 일본 사단법인 일본요리연구회는 '월간 일본요리'를 통해 일본의 정통 초밥(스시) 등을 소개한다. 레시피도 공유하며 맛을 함께 나누고 있다.
지난 4일 저녁 기자는 타쿠미곤에서 직접 숙성 초밥의 맛을 보았다. 그날은 무슨 주변 회사들의 시무식 등으로 사람이 없어 권 셰프에게 오롯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기자에게 4일간 숙성한 우럭을 칼로 썰어 여러 가지 양념을 덧대 만들어 준 권 셰프는 "숙성한 생선은 활어보다 독소가 훨씬 적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영양도 더 풍부해져요"라며 몇 마디를 더 했다.
기자는 그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숙성 회의 장점 때문이 아니었다. 권 셰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몇 번 씹지도 않은 초밥이 입에서 모조리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에 있는 약 120년 역사의 전통 일식 레스토랑과 미쉐린 투스타 초밥집에서 17년 동안 배운 실력과 스스로 9년을 더 공부한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권 셰프는 일본에서 에도마에 초밥을 공부했다. 일본이 근대화되기 전 정통 방식이 에도마에다. 국내 유일하게 권 셰프만이 에도마에 초밥을 만든다. 이 방식을 해야만 생선 속 불포화지방산이 농축되고 글루타민산, 아미노산 등이 풍부해져 '감칠맛'이 최고 수준에 오른다.
그 정보를 알고 '매실+레몬 소금'을 덧댄 농어 초밥을 먹었을 때는 오키나와 해변에서 초밥을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키나와 바다 깊은 물로 만든 소금은 색다른 짠맛을 선물해줬다.
기름기가 특징은 금태, 북해도에서 겨우 잡는 보탄새우, 6개월 동안 숙성한 전갱이, 일본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들이 먹는 사과즙으로 3년간 숙성한 우메보시, 그 어느 곳보다 찐득한 성게알 그리고 1년 4개월을 숙성한 고등어 등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특히 고등어 초밥은 단맛, 신맛, 짠맛을 가지고 있었다. 널따란 고등어 회 중 어디를 씹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맛이 났다.
권 셰프가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바로 오직 초밥밖에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공무원이었다. 29살, 결혼한 아내도 있던 그는 부산의 한 호텔에서 초밥을 먹은 뒤 일본으로 향했다.
"그때 그게 내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본 말도 잘 할 줄 모르는데, 그냥 무작정 갔습니다"
무작정 덤빈 그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 밤낮없이 초밥에만 매달렸다. 일본 현지인들도 처음에는 권 셰프를 무시하고 하대했지만, '넘사벽' 실력을 뽐내는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 셰프는 "일본인들은 무시하다가도 자기보다 실력이 위라고 생각하면 복종하더군요"라고 회상했다.
그렇게 독하게 익힌 초밥을 이제는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게 권 셰프의 진심이다.
권 셰프는 "제 앞에서 맛있게 초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더없이 행복해요"라면서 "어떤 날에는 번듯한 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분들 몇 명 오셨는데, 초밥을 입에 넣어드렸더니 아이처럼 기뻐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누구나 제 앞에서 다섯 살 아이처럼 기뻐하며 초밥을 먹는 모습이 보고 싶슾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 그는 모든 정성을 다해 겸허한 마음으로 늘 생선들을 숙성시킨다고 한다.
그의 말에는 물론 진심이 담겨 있었지만, 진짜 진심은 귀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그가 내어준 성게알, 전복, 삼치뱃살, 시마아지, 참치를 칼로 다진 오하기 초밥 등을 머금은 입에서 확인이 됐다.
타쿠미곤의 점심 오마카세는 10만원, 코코로는 15만원이다. 저녁 오마카세는 20만원이며, 타쿠미곤은 25만원이다.
한편 타쿠미곤의 타쿠미는 '장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10년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만요에서 총괄 셰프로 초밥 카이세키 메뉴를 성공시키고 스시만 레스토랑 총괄 셰프를 거쳤다.
이후 타쿠미곤을 오픈하고 오너 셰프로서 일본 정통 에도마에 스시를 한국인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가 일본에 있었던 스시 쇼우사이토우는 미쉐린 2스타를 받은 초밥집이다.
권오준 셰프의 타쿠미곤은 미쉐린 가이드 2019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