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21일(목)

"11살 때 나를 성폭행한 '테니스 코치'를 15년 만에 경기장에서 맞닥뜨렸습니다"

인사이트뉴스1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가운데, 체육계에 그간 만연했던 성폭력 실태가 최근 논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거 테니스 선수 출신 김은희 씨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8일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를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세종은 심석희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며 추가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심석희 측에 따르면, 심석희는 17살이던 지난 2014년 이후 조 전 코치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에 시달렸다.


운동 코치가 미성년자 제자를 성폭행한 사건. 이는 지난 2016년 세간에 알려진 테니스 선수 출신 김은희 씨의 사연과 비슷하다.


인사이트SBS 스페셜 '#미투 (Me Too) 나는 말한다'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1년 약 1년간 당시 코치에게 네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뽀뽀'가 가장 수위 높은 단어였던 어린 소녀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코치는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 혐의로 사직 처리됐고 다른 여러 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갔다.


2016년, 김씨는 한 테니스 대회장에서 가해자와 우연히 마주친다. 상대방은 선글라스를 끼고 버젓이 시합에 출전하는 모습이었다. 15년이 흐르고 나서야 김씨는 코치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김씨는 "당시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광주여성의전화 등 4개 기관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도움을 준 기관은 광주여성의전화뿐이었다"고 밝혔다.


인사이트SBS 스페셜 '#미투 (Me Too) 나는 말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씨는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도 각각 신고 메일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도록 수신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김씨는 "담당 조사관이 배정되는 데만 보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한 기관 담당자는 김씨에게 이길 수도 없는 사건을 왜 다시 꺼내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김씨는 "혼자 고소를 준비하며 이들이 '누구를 위한 기관인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를 끊임없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외롭고 긴 싸움 끝에 결국 법원은 가해자 코치에게 징역 10년형과 12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인사이트SBS 스페셜 '#미투 (Me Too) 나는 말한다'


가해자의 상고심 항소는 기각됐고 지난해 7월 코치는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처음 고소장을 작성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수도 없이 되새겨야 했던 지난 2년간 재판을 포기할까 많이도 고민했다는 김씨. 단 한 가지 생각이 그를 붙잡았다.


김씨는 "'반드시 승소해서 다른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사례를 만들겠다'는 다짐 하나로 시작한 일이기에 외로운 싸움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씨뿐 아니다. 국내 체육계에는 성폭력 문제가 만연하며 이를 은폐시키는 구조가 굳게 고착돼있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얼마 전 불거진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폭로 사태도 해당된다.


이에 대해 여성 체육 전문가들은 한국 체육계의 보수적·폐쇄적 분위기 하에서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있으며, 애초에 여성 스포츠인들이 자기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