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규정 기자 = 우리나라 여자 컬링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컬링 종목 '은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사실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까지 '컬링'은 대중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상황이 달라졌다.
폭발적인 집중력과 완벽한 팀워크, 섬세한 기술로 예선 1차전부터 여자 컬링팀은 국민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전 국민을 '영미 신드롬'에 빠트린 여자 컬링팀은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영웅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컬링팀이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올림픽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가시밭길과 다름 없었다.
은메달 기념 기자회견에서 스킵 김은정이 "국가대표가 됐는데 저희를 더 힘들게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 토로했을 정도다.
컬링팀을 이끈 김은정 감독도 세 번이나 눈물을 보이며 지원이 열악해 많이 힘들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컬링 대표팀은 지난해 12월 서울 태릉선수촌에 입촌했지만 왕복 3시간 떨어진 경기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장에서 훈련해야 했다.
빙질과 스톤 상태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대한컬링경기연맹의 집행부 내분으로 대한체육회가 컬링 대표팀 관리를 맡으면서 컬링팀은 제때 지원을 받지 못했다.
보다 못한 여자 컬링 대표팀 피터 갤런트 코치와 남자 컬링 대표팀 밥 어셀 코치는 지난해 12월 8일 대한컬링경기연맹에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두 사람 모두 캐나다 출신으로 3년 전 경북체육회 컬링팀에서 코치를 하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들은 편지를 통해 "컬링 남녀 국가대표팀 외국인 코치로서 대표팀이 최선의 환경에서 2018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기를 바란다"며 "하지만 이번주 훈련 조건은 올림픽을 준비하기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도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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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선수들이 이동시간 때문에 하루에 3시간씩 허비해야 할뿐더러 얼음 상태가 매우 미흡해 훈련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려면 올림픽 경기장 조건에서 훈련해야 하는데, 이천훈련원 얼음은 너무 두꺼워 표면 온도 조절이 어려웠다.
때문에 스톤이 휘는 정도, 스피드, 슬라이딩, 스위핑 등을 연습할 수가 없었다.
당시 코치들은 "이런 환경에선 올림픽을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 선수들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연맹과 행정가들은 팀이 되도록, 최고의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간곡히 요청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같은 호소문에도 컬링팀의 열악한 지원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부실 공사로 경기장 완공이 늦어지면서 선수들은 막상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강릉컬링센터에서도 마음껏 훈련하지 못했다.
개최국이었지만 9일간 32시간 훈련한 게 전부였다.
결국 여자 컬링 대표팀은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자구책을 마련해 훈련을 이어갔고 오직 선수들과 감독, 코치의 노력만으로 은메달을 따냈다.
그렇다면 은메달을 획득한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을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한컬링연맹에는 포상금 규정이 없다.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다. 컬링 대표팀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연맹에서 단 한 푼의 포상금도 받지 못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후원사 휠라 코리아가 주는 포상금이 전부다. 이는 1인당 3천만원 안팎으로, 막대한 지원을 받아 2억원의 포상금을 챙긴 '배추보이' 이상호(스노보드)와 크게 대조된다.
여자 컬링 대표팀이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딛고 전국에 컬링을 널리 알렸지만 꿈나무 육성도 미지수다.
현재 의성여고 컬링팀은 일반 체육교사가 훈련을 도맡고 있다. 지원금이 없어 전문 코치도,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겨우 꽃피운 동계스포츠 컬링마저 명맥이 끊기고 말 것이다.
이번 2018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컬링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대한컬링연맹과 대한체육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예산 편성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