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8일(목)

"비둘기도 애교 부려요"... 뉴욕 골칫거리 '비둘기' 집사 자처한 여성들

'날개 달린 쥐'라 불리며 도시의 기피 대상으로 전락한 비둘기를 반려조로 맞이해 극진히 보살피는 이들이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전역에서 밀레니얼 및 Z세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비둘기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비둘기 소녀들'이 늘어나며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뉴욕 브루클린에서 작가이자 공연가로 활동하는 비미니 라이트는 지난 2025년 9월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승강장 바닥에서 비틀거리며 굴러다니던 새끼 비둘기 한 마리가 라이트의 발등으로 돌진한 것이다.


선로로 떨어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상황에서 새끼 비둘기를 구조한 라이트는 임시로 상자를 마련해 보호하기 시작했다.


actress-bimini-cricket-keeps-pigeon-130983202_4ccb17.jpg뉴욕포스트


야생동물 구조 단체의 조언에 따라 원래 자리에 돌려보내려 시도하기도 했으나, 다음 날 여전히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새를 본 후 평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라이트는 "새끼 새가 디즈니 공주에게 가듯 내 손으로 직접 날아들었을 때 운명임을 직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의 특별한 동거 스토리는 온라인상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라이트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비둘기 '스미전'의 영상은 순식간에 24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히 비둘기가 알곡을 먹는 방법을 배우는 일명 '알곡 학교' 졸업 영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라이트는 스미전이 세계 여성의 날에 첫 알을 낳으면서 암컷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비둘기를 키우는 문화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인스타그램 등 주요 플랫폼에는 비둘기 사랑이나 비둘기 라이프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수십만 건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도시 어디에나 있는 비둘기가 훌륭한 반려동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이 늘어나면서 비둘기 입양이 새로운 선택지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카고의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지 소토 역시 수십만 명의 팔로워에게 반려조 '케들'과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소토는 비둘기 전용 바지를 입히거나 비둘기 둥지의 실제 모습을 공개하는 등 교육적이면서도 유쾌한 콘텐츠를 제작한다.


pigeon-kettle-based-chicago-131202138.jpg뉴욕포스트


소토는 기도의 통기성을 위해 실내에 공기청정기 두 대를 가동하는 등 세심하게 케들을 관리하고 있다. 소토는 케들을 "따뜻한 목욕을 즐기고 애교를 부리는 작은 디바"라고 표현하며 고양이처럼 밀당을 하는 매력이 있다고 전했다.


루이지애나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한나 르무안은 반려조 '모네'를 키우며 비둘기의 높은 지능에 감탄했다고 털어놨다.


르무안은 모네를 어깨에 얹고 야외 예술 축제나 장보기에 동행하는데, 모네는 르무안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얌전하게 사람들을 구경하곤 한다. 르무안은 비둘기를 혐오하는 시선에 대해 "길거리의 야생 비둘기도 아기 때부터 정성껏 키우면 반려조와 똑같이 행동한다"며 비둘기는 지능이 높고 감정이 있는 놀라운 생명체라고 강조했다.


토론토의 웰니스 전문가 니키 슈메이커는 쓰레기로 뒤덮인 화분에서 구조한 비둘기 '피지'에게 특급 호텔 못지않은 호화로운 삶을 제공하고 있다.


방 안에 방수 패드와 식물로 꾸민 침대를 세 곳이나 만들어주었고, 아침마다 치와와 반려견과 함께 비둘기를 안고 일출을 감상한다.


pigeon-s-name-pidgy-nikki-131190192.jpg뉴욕포스트


심지어 샤워기로 목욕을 시켜주거나 필라테스를 함께 하고, 천연 원석 마사지 도구로 비둘기의 얼굴을 부드럽게 마사지해 주기도 한다. 슈메이커는 처음에는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하는 등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았지만, 편견을 넘어 생명을 자비롭게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둘기가 더러운 유해 조류라는 악명을 얻게 된 것은 역사적 오해에서 비롯됐다. 수의대생이자 비둘기 재활 치료사로 활동하는 로리 랜젤리어는 1960년대 뉴욕의 공원 공무원이 인간 수막염 전파의 원인으로 비둘기를 지목하며 '날개 달린 쥐'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역학조사 결과 비둘기와 수막염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미 굳어진 부정적 인식 탓에 유해 동물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랜젤리어는 과학적으로 비둘기와 비둘기과 새는 구분이 없다고 짚으며, 비둘기가 비교적 키우기 쉬운 새에 속하지만 수명이 길고 사람과의 교감이 많이 필요한 만큼 입양 전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