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브로커에게 800만원을 지급한 뒤 뇌전증 진단으로 병역 감면을 받은 20대 남성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지난 2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3단독 김성은 판사는 지난 17일 병역법 위반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28)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A씨는 2020년 4월 병역브로커 B씨와 만나 800만원의 보수를 지급하고 범행을 공모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브로커와의 만남 이틀 후 A씨는 전주시 소재 병원을 찾아 과거부터 뇌전증 관련 경련 증상을 겪어왔다고 호소했습니다. 이후 6개월간 처방약을 복용한 A씨는 같은 해 12월 병역판정검사에서 전시근로역인 5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검찰은 A씨가 병역 기피나 감면을 목적으로 속임수를 썼고, 병무청 담당 의사와 관할지방병무청장 등의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했다고 보고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실제로 뇌전증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병역의무 기피 목적의 속임수 사용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A씨는 2019년 의사로부터 '너의 몸 상태로는 군대에 갈 수 없으니 다시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들었으며, 본인도 여러 차례 경련이나 발작 증상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허위 증상을 조작해 병역을 감면받으려 했다기보다는 실제 자각하던 증상에 기초해 병역 면제 방법을 알아보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법원은 A씨의 개인적 상황도 고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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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고교 3학년 시절 양부모가 별세하면서 친할머니와 거주하게 되었고, 보호 종료 아동이자 기초생활수급자로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법원이 주목한 것은 A씨가 2020년 4월 병원에서 실시한 뇌파검사에서 간헐적으로 우측 전두엽과 측두엽에서 스파이크파가 관찰된다는 진단을 받은 점입니다.
재판부는 "뇌전증 진단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병무청 담당 의사가 비교적 신속하게 5급으로 판단한 것은 피고인에 대한 뇌파 검사 등 의학적 소견이 명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병역 브로커의 개입이 있었더라도 이것이 허위 증상 호소가 아니라 기존 증상을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부각하기 위한 조언이라면 속임수를 쓰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