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7일(월)

"민주화운동의 숨은 공로자" 'DJ 차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별세... 향년 75세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 이사장, 75세로 별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이사장이 24일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75세.


김홍업 이사장은 1950년 7월 29일 전남 목포시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했으나, 당시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의 지속적인 감시로 인해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웠고, 이에 부친의 민주화 활동을 돕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origin_유족인사하는김홍업이사장 (1).jpg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 뉴스1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투옥되었을 때, 김홍업 이사장은 모친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재야인사들과 구명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습니다. 


당시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관련자 부인들이 입에 검은 십자 테이프를 붙이고 진행한 침묵시위는 김홍업 이사장의 기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0년에는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시위 배후 조종 혐의로 지명수배되었고, 3개월간의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되어 70여 일간 고문을 당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에도 김홍업 이사장은 함께하며 '미주 인권문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존 케리, 에드워드 케네디 등 미국 정계 유력 인사들과 교류하며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국제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origin_유족인사하는김홍업이사장.jpg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 뉴스1


고 김근태 전 의원의 고문 사건을 담은 인재근 전 의원의 녹음테이프를 뉴욕타임스에 제보하여 전 세계적인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민주화 투쟁에서 정치 활동까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빛난 삶


1987년 귀국 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정치 홍보·기획사를 설립했으며, 1997년 대통령 선거 승리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인기 그룹 'DJ DOC'의 노래를 개사한 'DJ와 함께 춤을' 선거 광고는 김홍업 이사장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 말기에는 권력형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펼쳤습니다.


origin_헌화마친김홍업전의원.jpg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 뉴스1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재단법인 김대중기념사업회(현 김대중재단)'을 설립했고, 2019년 이희호 여사 서거 후에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직을 맡아 김 전 대통령의 평화·인권·화해협력 정신을 계승하는 데 힘썼습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김 이사장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성품으로 대중에게는 깊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버지의 영광 뒤에서 모든 고난을 함께 짊어졌던 아들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험난한 여정의 가장 든든한 동지였다"고 그의 삶을 회고했습니다.


김홍업 이사장의 별세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중에는 막내인 김홍걸 전 의원만 남게 되었습니다.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은 군사정권의 고문 후유증으로 오랜 투병 끝에 2019년 4월 20일 향년 71세로 별세한 바 있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선련 씨와 아들 종대, 종민 씨 등이 있습니다.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집니다.


김대중평화센터와 김대중재단이 장례를 주관하며, 장례위원장은 남궁진 전 문화부장관, 집행위원장은 배기선 김대중재단 사무총장이 맡습니다. 


origin_김홍업전의원형님아버지와만났을것.jpg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