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4일(토)

"오늘(26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순국 115주기입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기...뤼순 감옥서 마지막 순간 맞아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32세의 한 청년이 숨을 거두었다. 대한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생명을 바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1일,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해 중국 하얼빈으로 향했다. 5일 뒤인 10월 26일, 그는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의 국권을 짓밟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인사이트안중근의사기념관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면서도 그는 "코레아 우라! (Корея! Ура!)"라고 외치며 조선의 독립을 향한 강렬한 염원을 드러냈다.


그는 법정에서도 결연히 "내 행위는 개인적 원한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한 정당한 의거였다"고 외쳤다.


옥중에서 안중근이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단순한 저항을 넘어 평화와 공존을 염원한 그의 깊은 철학과 사상을 보여준다. 


인사이트국가보훈처


그는 군인의 명예를 지키고자 총살형을 요구했지만, 일제는 그를 교수형으로 처형하며 마지막까지 그의 존엄을 짓밟았다.


안중근은 숨을 거두기 전 "내가 죽은 뒤 내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 두었다가, 조국이 주권을 찾으면 고국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유해는 일제의 두려움으로 인해 11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고국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다.


오늘, 우리는 다시 그를 기억하며 안중근 의사가 못다 이룬 꿈과 약속을 가슴에 새긴다. 역사 속 오늘, 그가 남긴 울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