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소통한 천재 보노보 '칸지', 44세로 별세
Instagram 'ape_initiative'
단순히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수준을 넘어 직접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고, 불을 다루고, 마인크래프트까지 즐겼던 천재 보노보 '칸지'가 세상을 떠났다.
25일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 위치한 유인원 보호·연구센터 '에이프 이니셔티브(ACCI)'는 2004년부터 센터에서 생활해온 보노보 '칸지'가 2023년 3월 18일 오후,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칸지는 인간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했던 특별한 보노보였다. 자발적으로 문장을 구성하고 불을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게임까지 즐기던 기존 유인원의 상식을 뛰어넘는 지능과 행동을 보여준 바 있다.
재능 넘치는 보노보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관계자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이별, 평범했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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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당일, 칸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에는 조카 테코와 술래잡기를 하며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오후가 되어 또 다른 조카 뇨타와 함께 누워 그루밍(털 손질)을 시작했지만, 그 직후 갑자기 칸지가 움직이지 않았다.
연구진이 급히 달려갔지만 그때는 이미 심장 박동과 호흡이 멈춘 상태였다.
사인은 부검 결과를 기다려야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칸지는 심장병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심전도와 혈압 모니터링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칸지의 존재에 주목했던 사람들로부터 많은 애도의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발견된 놀라운 언어 능력
YouTube 'ChrisDaCow'
칸지는 1980년 10월 28일에 태어나 조지아주립대학 언어연구센터(LRC)에서 수 새비지 램보 박사에 의해 양육됐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봄이었다.
램보 박사는 예키스 영장류연구센터에 있던 칸지와 그의 양어머니 마타타를 LRC로 데려왔고, 발달장애 아동들의 의사소통에 사용되던 '렉시그램 보드'를 사용해 의사소통 실험을 시작했다.
박사는 먼저 양어머니 마타타에게 음식을 의미하는 기호를 가르치려 했다. 그러나 마타타는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훈련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어린 칸지는 옆에서 놀고 있었을 뿐,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2년 후, 마타타는 번식을 위해 일시적으로 영장류연구센터로 돌아가게 됐다. 마타타가 없는 동안 칸지는 매일 그녀를 찾아다녔다. 지친 칸지는 어느 날 갑자기 램보 박사 앞에서 '사과'와 '추적'이라는 키를 눌렀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박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칸지가 배운 적도 없는 렉시그램을 처음부터 능숙하게 사용했다고 본 것이다. 그날 칸지와 박사는 렉시그램을 사용해 120회 이상의 의사소통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인간 언어의 경계를 넘어선 보노보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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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지는 이후 박사와 함께 ACCI로 이주해 여러 단어를 조합하여 자발적으로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칸지는 약 3,000개의 어휘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칸지의 놀라운 점은 언어를 강제로 교육받은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습득했다는 것이다. 이 렉시그램 시스템은 후에 '야키시'라는, 인간 이외의 영장류와의 대화에 사용하는 인공언어로 정비되어 유인원과의 의사소통에 사용되고 있다.
칸지가 보여준 놀라운 능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유인원 실험에서는 '언어'가 아닌 인간의 표정이나 시선에서 정답을 파악하는 경우가 확인됐지만 칸지는 전화를 통해 목소리만으로 받은 지시를 이해하고 확실하게 정답에 도달했다. 또한 팩맨 게임의 복잡한 규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즐기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고 마시멜로를 구운 뒤 마지막에는 제대로 물을 뿌려 불을 끄는 행동까지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언어학계에 던진 도전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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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화를 구사하는 고릴라 코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램보 박사와 칸지의 관계에도 비판이 제기됐다. "서커스에서의 조련과 같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칸지의 '언어'는 받아들이는 인간(특히 램보 박사) 측의 해석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전치사나 조사, 대명사, 조동사와 같은 기능어를 다루지 못했다. 또한 복수형이나 구문을 다루는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많은 언어학자들은 칸지가 언어를 사용해 인간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이 그가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램보 박사의 "언어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유인원도 학습 가능하다"는 의견과는 상충되는 것이다.
칸지의 존재는 '언어'와 '의사소통'의 관계에 대해 언어학, 심리학, 인지과학 분야의 학자들 사이에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ACCI에는 칸지의 조카 테코와 뇨타, 마타타의 아들 마이샤, 마타타의 딸이자 테코의 어머니인 에리키야,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온 클라라,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온 마리 등 6마리의 보노보가 살고 있다.
ACCI는 현재 칸지의 생애와 그가 전 세계에 미친 영향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