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를 선고받고 출소한 김신혜 씨 / 뉴스1
친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4년간 복역한 김신혜(47) 씨.
최근 사건 발생 25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된 그가 심각한 망상 증세로 고통받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김씨와의 인터뷰, 친동생 김후성 씨와 무죄 판결을 이끈 박준영 변호사 등이 전한 이야기를 통해 김씨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중국인이라 주장하며 중국이 애타게 찾아온 황실의 후계자라고 하거나 러시아 황실의 주인이자 많은 왕실들의 핏줄이라고 하는 등 비현실적인 주장을 펼쳤다.
또 그는 한국인인 친부에게 납치를 당해 한국에 오게 된 것이라고 했으며, 진짜 동생은 정신병원에 갇혔다가 죽었고 지금은 가짜 동생만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나는 스페셜 에이전트, 전 세계 한 명뿐인 에이전트"라며 재판이 모두 연극이라고 했다.
동생 후성 씨는 "누나가 망상이 심해 저를 적으로, 자신을 해코지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후성 씨와 나눈 대화 녹취록에는 김씨가 "왜 나를 가둬두려고 하냐", "네가 원하는 각본으로 사람을 갖다가 세뇌하고 강요하냐", "중국 사람이랑 한국 사람을 바꿔치기하려고 한다" 등 횡설수설하는 모습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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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교도관은 그가 교도소에서 독방을 고집하며 망상이 심해졌다고 전했다.
교도관은 "독방이 전체적으로 보면 0.97평 정도 된다. 제 기억으로 김씨는 2015년부터 계속 '재심 재판에 집중하고 싶다', '기록이 없어지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며 독방에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효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재심을 신청하면서 희망이 커졌으나 기다림이 점점 길어지며 불안이 커졌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고립된 세상에서 혼자만의 판타지에 살았다. 혼자만의 세상 속에서 25년 동안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불운한 일들을 타당화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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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김씨는 "중국대사관에 전달할 서류가 있다"며 돌연 가출을 감행했고 결국 동생 후성 씨는 김씨를 한 국립병원에 응급입원시키기로 했다.
앞서 김신혜 씨는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서 아버지 A(당시 52세)씨에게 수면제를 탄 양주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당시 수사 과정에서 "나와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다량의 수면제를 양주에 탔고 '간에 좋은 약'이라고 속여 살해했다"라고 자백했으나, 정작 재판에서는 이를 번복하고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라는 고모부의 말을 듣고 동생 대신 교도소에 가려고 거짓 자백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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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을 번복했음에도 1심 법원은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에 이어 대법원 상고심에서도 법원은 무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형을 확정했다.
당시 법원은 김씨가 아버지 앞으로 거액의 보험을 든 후 이 보험금을 노리고 고의로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당시 경찰 조사와 관련해 자백이라고 하는 진술서는 형사가 쓴 소설이었으며 아무리 범행을 부인해도 조서에는 담기지 않았다는 김씨 측 주장을 전했다.
또한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씨는 한 번도 범행을 인정한 적이 없으며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폭행과 욕설 등 가혹행위를 하며 허위 자백을 하도록 협박했다고 한다.
김씨의 집을 수색했던 당시 경찰은 사건과 무관한 물건도 챙겨왔는데 그중에는 배우를 꿈꾸던 김씨가 찍은 세미누드 사진도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 사진을 돌려보며 조롱하는가 하면 이를 뿌리겠다고 협박까지 해 김씨는 큰 고통을 당했다고 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친부 살해 혐의로 복역 중이던 김씨는 사건 발생 24년 10개월 만인 지난달 6일 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박현수 지원장)가 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심에서는 범행 동기, 자수 경위, 수면제 등 증거, 강압·불법 수사 여부 등이 쟁점이 됐으나 재판부는 김씨가 수사기관에서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한 진술 조사를 부인하는 만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특히 "김씨가 사건 당시 남동생이 범인으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동생을 보호하려고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김씨가 술에 타 먹인 수면제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공소사실도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봤다.
경찰이 주장했던 보험금 액수와 실제 받을 수 있는 금액 간 차이가 있었던 것도 확인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김씨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이 약 8억 원가량이라고 했던 경찰의 주장과 달리 독극물이 검출되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8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검찰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13일 항소했다.
광주지검 해남지청은 판결에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심판결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가 있다"라고 주장하며 항소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