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술에 취한 여성이 고속도로를 횡단하다 차량에 치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경찰의 부실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유족들은 남자친구의 차에 갇힌 피해자가 112로 신고해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경찰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경찰은 신고 내용이 긴급하지 않다고 판단해 출동 지령조차도 내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발생 현장 / KBS
지난 23일 KBS의 보도에 따르면 2022년 11월 18일 새벽 호남고속도로 비아버스정류장 부근 편도 2차선 도로에서 장 모(39) 씨가 고속도로를 달리던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장씨는 남자친구가 자신을 차에 태운 후 갑자기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실랑이를 벌이다 갓길에 잠시 정차한 사이 차에서 빠져나와 도움을 구하려다 사고를 당했다.
사고 한 시간 반 전 장씨는 112에 신고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시내를 달리던 중 말다툼이 벌어졌고 남자친구가 제멋대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장씨는 휴대전화로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장씨가 "차량 조수석에 납치돼 있다"라면서 출동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안 오셔도 돼요. 저 여자 술에 취해서"라는 휴대전화 너머 남자친구의 말만 듣고 출동 지령도 내리지 않았다.
경찰의 112 신고 처리 규칙은 긴급성에 따라 5단계로 분류되는데, 경찰은 장씨의 신고 내용이 단순 민원이나 상담 신고에 해당하는 가장 낮은 단계인 '코드 4'로 분류했다.
신고를 취소할 것인지 신고자 본인에게 확인하는 과정도 없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하지 않자 다급해진 장씨는 남자친구가 갓길에 차를 세우자 도로를 지나던 택시에 도움을 요청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KBS에 따르면 "살려주세요. 맞았으니까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라는 장씨의 말에 당시 승객을 태우고 있던 택시 기사는 대신 112에 신고했다.
장씨의 남자친구는 이때도 옆에서 "아무 일도 아니니까 그냥 가세요. 신고는 내가 해줄게. 씨XX아"라며 막아섰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장씨가 다른 차량에도 도움을 요청하려던 순간, 한 승용차가 그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치여 사망사고로 이어졌다.
경찰은 사고 발생 후 현장에 도착했다.
이런 사실은 장씨의 남자친구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후 광주지법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드러났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광주경찰청은 KBS에 당시 112신고를 코드 4로 분류한 것에 대해 "허위·오인신고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판단을 내린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민·형사상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로부터 이번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도 경찰의 112신고 처리 과정을 문제 삼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숨진 장씨의 유족은 112신고가 묵살돼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검찰은 장씨의 남자친구가 장씨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려고 계속 붙잡아둬 사고를 야기했다고 봤다. 이어 "위험한 고속도로에서 사고 발생 가능성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장씨를 직접 피신시킬 의무가 있었다"라며 그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술에 취한 여자친구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 것이라고 미리 예상할 수 없어 주의 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라며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