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손상되면 자연적으로 재생되지 않는 치아 법랑질을 복원할 수 있는 신소재 젤이 개발돼 주목받고 있다. 침 속에 존재하는 미네랄을 활용해 손상된 치아의 구조와 강도를 회복시키는 기술로, 향후 충치 예방과 시린 이 치료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8일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데일리 등에 따르면 영국 노팅엄대학교 약학부와 화학·환경공학과 연구진은 타액(침)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칼슘과 인산 이온을 활용해 손상된 치아 법랑질을 재생하는 단백질 기반 젤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법랑질은 치아의 가장 바깥쪽을 감싸는 조직으로, 인체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 충격과 산성 물질로부터 치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살아있는 세포가 없어 한 번 손실되면 자연적으로 재생되지 않는다.
그동안 치과에서는 불소 바니시나 재광화 치료제 등을 활용해 법랑질을 보호하고 초기 미네랄 손실을 회복시키는 치료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이미 상당 부분 손실된 법랑질의 미세 구조와 물리적 특성을 온전히 복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이 개발한 젤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치아가 처음 형성되는 과정에서 법랑질의 성장을 유도하는 단백질의 기능을 모방하도록 설계됐다.
특히 기존 불소 치료제와 달리 불소 성분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젤을 치아 표면에 바르면 얇고 견고한 막이 형성돼 미세한 균열과 틈새를 채운다.
이후 침 속에 존재하는 칼슘과 인산 이온을 끌어들여 새로운 미네랄 결정이 기존 법랑질의 결정 배열을 따라 성장하도록 유도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과정을 '에피택셜 광물화(epitaxial mineralization)'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치아 표면에 미네랄을 쌓는 것이 아니라 기존 법랑질 결정과 같은 방향으로 새로운 결정이 성장하도록 해 자연 치아와 유사한 미세 구조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법랑질의 단단함과 내구성은 미네랄의 양뿐 아니라 결정들이 정교하게 배열된 구조에서 비롯된다. 연구진은 이 같은 자연 형성 과정을 모방해 손상된 법랑질의 구조와 물리적 특성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실험 결과도 긍정적이었다. 연구진은 칫솔질과 음식물 저작(씹기), 산성 음식 노출 등 일상생활에서 치아가 겪는 환경을 모방해 재생된 법랑질의 기계적 강도와 내구성을 평가했다.
그 결과 젤을 통해 형성된 법랑질은 건강한 자연 치아와 유사한 물리적 특성을 나타냈다. 단순히 치아 표면을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 손상된 조직의 구조와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번 기술은 법랑질 손상뿐 아니라 치아 민감성으로 불리는 '시린 이' 증상 완화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랑질 아래에 위치한 상아질은 미세한 관을 통해 외부 자극을 치아 내부로 전달하는 조직이다. 잇몸이 내려앉거나 법랑질이 마모돼 상아질이 노출되면 차갑거나 뜨거운 음식, 단 음식 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연구진은 새로 개발한 젤을 노출된 상아질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젤이 상아질 표면에 법랑질과 유사한 미네랄 층을 형성해 외부 자극을 줄이고, 치과 충전물의 접착력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를 이끈 알바로 마타 노팅엄대학교 교수는 해당 기술이 치과 의료진과 환자를 고려해 개발됐으며, 안전하고 간편하게 적용할 수 있고 대량 생산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기술 상용화를 위해 스타트업 기업 민테크바이오(Mintech-Bio)를 설립하고 제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알바로 마타 교수는 “내년까지 첫 제품을 출시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이 혁신적인 기술은 머지않아 전 세계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된 성과는 실험실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실제 환자에게 적용했을 때의 장기적인 안전성과 치료 효과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임상 검증이 필요하다.
향후 임상시험과 상용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기존의 치아 손상 부위를 보호하거나 인공 재료로 메우는 치료에서 나아가 손실된 법랑질 자체를 재생하는 새로운 치과 치료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