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09일(월)

국중박 스타 된 '잉어 연적', 알고 보니 이건희 컬렉션에 있던 조선시대 백자 유물이었다

취준생이 5만원으로 재현한 백자 잉어 모양 연적이 국중박 분장놀이 대상을 받으며 이건희 컬렉션 기증품이자 등용문 상징 유물로 재조명됐다.


최근 '2026 국중박 분장놀이' 대상작으로 화제를 모은 백자 잉어 모양 연적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반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통통한 몸매와 동그란 눈이 귀여워 SNS에서 먼저 주목받았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이 꿈꾸던 입신양명의 상징이자 이건희 컬렉션 기증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관심이 증폭됐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23일부터 서울 용산구 상설전시관 3층 분청사기·백자실에서 백자 잉어 모양 연적을 공개했다. 


연합뉴스TV가 28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건희 컬렉션으로 기증된 뒤 처음으로 이뤄지는 전시로, 오는 10월 22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높이 9.4㎝, 길이 10.6㎝의 작은 백자 청화 연적이지만 담긴 의미는 무겁다. 


연적은 벼루에 먹을 갈 때 물을 담아두는 문방구로, 이 유물은 중국 황허강 상류 용문에 오른 잉어가 용으로 변한다는 고사를 형상화했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출세한다는 뜻의 '등용문'이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유물을 자세히 보면 잉어 아래쪽에 청화 안료로 출렁이는 물결이 표현돼 있다. 몸을 둥글게 세우고 커다란 눈과 입을 드러낸 잉어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을 포착한 모습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연적이 수백 년 만에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지난 19일 열린 분장놀이 대회 덕분이다.


올해 행사에는 전국에서 275팀, 643명이 참가했다. 강원 춘천, 충남 공주, 대구, 전북 전주 등 권역별 본선을 거쳐 25개 팀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결선 무대에 올랐다.


현장에는 수천 명의 관람객이 모여 기발한 유물 재현에 환호를 보냈다. 대상을 받은 주인공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 중인 전은슬 씨였다.


전 씨는 몸에 밀착되는 의상에 연적의 푸른 물결무늬를 그렸고 얼굴에는 커다란 잉어 눈과 입을 표현했다.


무대에서는 바닥에 몸을 붙인 채 다리를 파닥거리거나 펄쩍 뛰어오르며 물 밖으로 솟아오르는 잉어의 움직임을 익살스럽게 재현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화려한 소품이나 거대한 장치를 동원한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비교적 단순한 분장이었지만, 유물의 형태와 특징을 정확히 살린 퍼포먼스가 관객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었다. 분장 비용은 약 5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전 씨는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의 소장품 자료를 뒤져 독특하면서도 현대적인 매력을 지닌 유물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방송 인터뷰에서 박물관 홈페이지 자료를 거의 끝 페이지부터 처음까지 살펴봤다고 밝혔다. 평소 엉뚱하고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했던 만큼 잉어의 동그란 눈과 독특한 입 모양에 끌렸다고 전했다.


취업준비생인 전 씨와 등용문을 오르는 잉어의 상징성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화제가 더욱 커졌다.


전 씨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고민하던 가운데 이번 대회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주변 친구들은 잉어와 인플루언서를 합쳐 전 씨를 '잉플루언서'라고 부르기도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인스타그램


분장 사진과 영상이 소셜미디어와 SNS에 퍼지자 누리꾼들은 유물 자체에도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누리꾼들은 "분장을 먼저 봤는데 실물을 보니 정말 닮았다", "이런 유물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몇백 년 전 유물인데 캐릭터 상품처럼 귀엽다", "취준생이 등용문 잉어로 대상을 받은 것까지 서사가 완벽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지난 2024년 처음 시작된 국중박 분장놀이는 단순한 일회성 코스프레 행사를 넘어 박물관의 대표 참여형 행사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SNS를 중심으로 화제가 된 데 이어 올해는 전국 단위로 규모가 확대됐으며, 참가자들도 유명 문화재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물을 적극적으로 찾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했다.


단순히 참가자의 재미있는 분장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본 유물의 이름과 내력까지 찾아보는 움직임이 이어진 점도 눈길을 끈다. 


국립중앙박물관 인스타그램


젊은 세대의 놀이 문화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박물관 소장품을 대중 앞으로 다시 끌어낸 셈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같은 관심에 발 빠르게 화답했다. 당초 수장고에 있던 연적을 상설전시관으로 옮겨 분장 모습과 실제 유물을 함께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대상 수상작에 영감을 준 실제 유물을 직접 보며 분장으로 재해석된 모습과 비교하는 재미를 느껴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하나인 이 연적은 잘 알려진 유명 유물보다 독특한 매력으로 대중과 만나는 새로운 문화재 향유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