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학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정부의 늑장 대응을 보여주는 외교부 공문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MBC는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외교부에 보낸 '우리 국민 피해자 구조'라는 제목의 공문을 입수했습니다. 공문에 따르면 외교부는 대학생 사망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이미 캄보디아 현지에서 벌어지는 감금 피해 사례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해당 공문에는 취업 사기를 당한 한국인의 감금 신고를 접수해 현지 경찰 지원으로 구출에 성공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작년 7월 11일 발생했으며, 외교부에는 하루 뒤인 7월 12일 보고됐습니다.
같은 날 대사관은 또 다른 공문을 통해 '캄보디아에 있는 아들이 협박당하고 있다'는 부모의 신고에 대한 조치 사항을 외교부에 전달했습니다.
대사관은 현지 경찰에 피해자 인적 사항을 제공하고 위치를 파악해 전달하겠다며 적극적인 대응 의지를 보였습니다.
윤석열 정부 외교부가 대학생 사망 사건 발생 약 1년 전 감금 범죄 위험성을 경고하는 캄보디아 대사관 보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사관이 지난해 7월 외교부에 보낸 건의사항입니다. 대사관은 "최근 급증하는 피해자 대부분 긴급 여권을 발급받은 사람들"이라고 굵은 글씨로 강조하며, 취업 사기 발생 지역의 긴급 여권 신청 시 업체·연락처·고용 형태 등을 상세히 기재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또한 여권 교부 시 감금 피해가 심각하다는 경각심을 알려야 한다고도 건의했습니다.
이후에도 대사관은 고수익에 속아 범죄단지에 감금되거나 탈출하는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외교부에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은 정권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제 캄보디아 현지 국정감사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대학생 사망 사흘 뒤인 8월 11일 대사관이 외교부에 보낸 공문에 '고문' 등 심각한 상황이 기재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조현 외교부 장관은 "사안의 심각성을 10월 초에야 인식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에 한병도 국회 행정안전위원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태였다. 1년 전에 대사관 건의가 있었는데 외교부와 관계 부처는 무엇을 했는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1년 전부터 울린 경고음을 무시했다는 지적에 대해 외교부는 캄보디아 방문용 긴급 여권 신청 시 여행 목적을 상세히 묻고, 범죄연루 의심이 들면 위험을 알린 뒤 출국하지 않도록 설득해 왔다고 해명했습니다.
다만 방문업체와의 고용계약 내용까지 요구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어 작성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공문 공개로 정부가 캄보디아 취업 사기와 감금 범죄의 심각성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