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받은 질문들을 두고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성폭행 사건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이 핵심 증거가 되는 만큼, 수사기관의 상세한 질문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22일 헤럴드경제는 법조계의 말을 빌려 서울중앙지법 이회기 판사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5000여만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A씨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 비용도 A씨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2020년 4월 A씨가 직장동료를 성추행·준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경찰과 검찰 모두 가해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A씨는 상급 기관에 재수사를 요청했습니다. 서울고등검찰청은 2021년 3월 준강간치상 혐의에 대해 다시 수사하라고 결정했습니다.
문제가 된 상황은 2021년 8월 서울동부지검 중요경제범죄수사단에서 A씨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진행될 때 발생했습니다.
A씨는 조사를 마친 직후 검찰청에서 쓰러졌고,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의식을 되찾아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습니다.
A씨는 당시 우울증으로 치료받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A씨 측은 수사관이 조사 과정에서 위법한 행위를 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수사관이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 질문과 성적 모욕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질문을 했다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수사관은 A씨에게 "예전에 모텔을 방문한 적이 있는냐"고 질문했습니다. 또한 학력, 주거, 이직한 회사명 등을 물었고, 성행위 체위에 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A씨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음에도 "옷을 벗고 잤느냐", "옷을 입고 잔 건 사실이냐" 등 사생활 관련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CCTV 영상을 보여주며 진행된 질문도 논란이 됐습니다.
수사관은 "서로 좋아서 손을 잡고 나간 것이냐?", "A씨가 장난치는 것처럼 피의자를 손으로 툭툭 쳤다", "좋아해서 반항하지 않는 것이냐"라고 물었습니다.
A씨 측은 이러한 수사관의 조사방식이 정당한 조사권한을 벗어난 위법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같은 직장에서 함께 근무한 점을 고려하면 A씨의 학력과 전공, 이직한 회사 등에 관해 질문한 것이 피의사실과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모텔 출입 경험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법원은 "A씨 입장에서 해당 장소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의식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물은 것으로 보인다"며 "무관한 질문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은 다른 질문들에 대해서도 "성폭행 여부는 객관적인 물적 증거나 목격자가 없이 피해자의 진술이 거의 유일한 유죄의 증거로서 수사가 이뤄진다"며 "수사기관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당시 상황을 자세히 진술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A씨 측이 제기한 다른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법원은 모두 문제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성폭력전담 검사 미배당, 과도한 수사기간, A씨가 쓰러졌을 때 수사관의 소극적 대응, 수사 중단 요청 거부 등의 사안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수사기관의 조사 중 고의·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