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온라인 사기 범죄에 연루된 한국인 청년들의 구출 작업을 담당해온 현지 한인회 관계자가 최근 충격적인 실상을 공개했습니다. 과거 취업사기로 속아서 온 피해자들과 달리, 이제는 범죄인 줄 알면서도 돈벌이를 위해 자발적으로 입국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19일 전대식 아시아한상 캄보디아연합회 부회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년 전만 해도 속아서 오는 애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범죄인 걸 다 알고 온다. 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전 부회장은 캄보디아에서 16년째 물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5월까지 캄보디아 한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약 3년간 '캄보디아 한인구조단'에서 구출 작업을 담당해왔습니다.
교민 20명으로 구성된 현지 한인회 구조단은 범죄단지 웬치에 감금된 한인 청년들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SNS 신고를 받고 약 800명을 구출했다고 합니다.
전 부회장은 "올해에만 400명 넘는 이들을 구출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구조 신고는 급증하고 있지만, 취업사기 등 '순수한 피해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스피싱과 로맨스스캠 등 범죄에 가담하는 줄 알면서 입국한 이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전 부회장은 "구출한 청년들을 또다시 만나는 경우가 있다"면서 "물어보면 '이게 돈벌이가 돼서 다시 왔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월 수천만원처럼 터무니없는 '고수익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온라인 사기에 가담해 손쉽게 월 30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 청년은 구출 과정에서 귀국 방법을 알려주자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라고 했다고 합니다. 전 부회장은 한국에 가면 처벌받는다는 걸 본인도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청년은 결국 다른 두 명을 범죄에 꾀어 모집한 혐의로 한국에 돌아가 구속된 뒤 징역 3년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의 귀국 종용에도 이를 거부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습니다.
교민 박모씨는 "범죄조직에서 자리를 잡은 한 청년은 부모가 '집으로 돌아와라'고 사정을 해도 안 간다고 하고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약 20명 정도를 구출했다는 다른 교민 장모씨는 "범죄조직이 무작정 감금하진 않는다. 모집할 땐 몸값도 쳐 준다"며 "이번에 송환된 피의자들도 구속 안 하고 풀어주면, 풀려난 다음 날 프놈펜 공항에 도착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지 카지노의 한 직원은 "웬치에서 실적만 잘 올리면, 자유로운 활동도 허용한다"면서 "잘 벌 때는 일주일에 수천만 원을 벌 수 있다. 이렇게 한번 큰돈을 만지고 나면 한국에 돌아가선 적응을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지 한인회 입장에서는 실제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 요청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웬치에 들어간 한국인 청년들이 감금됐다가 구조 신호를 보내면 응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전 부회장은 "한인회에 연락이 온 건 휴대전화를 돌려받았다는 뜻"이라면서 "이때 구조 요청자가 '식사 시간에 잠깐 나올 수 있다'고 메시지를 하면 '다 포기하고 일단 나와라. 우리가 앞으로 가겠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구출한 한국인 청년 대부분은 여권과 현금 등은 범죄단지에 두고 몸만 빠져 나온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전 부회장은 "일단 귀국 비용은 자가 부담"이라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한테 직접 연락해 송금받아 나가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한인회가 비용을 지원하는데, 한인회가 지출한 송환 비용만 약 4억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전 부회장은 "영화에서 볼 법한 장기를 적출할 목적의 인신매매는 몰라도 범죄조직간 '인신 거래'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아누크빌에 근거를 둔 범죄조직이 데리고 온 한국인이 일을 잘 못 한다고 하면, 베트남이나 태국 국경 쪽 조직에 돈을 받고 파는 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 부회장은 "지금은 캄보디아 경찰도 움직이는 등 시끄러워져서 민간조직인 한인회가 위험을 무릅쓰기도 어렵다"고 말하면서 "정부간 공식 송환 채널 설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주중 캄보디아 정부와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합동 태스크포스는 양국 경찰관이 수사 과정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수사 공조와 범죄 연루자를 조기 송환하는 조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코리안데스크를 대신하는 성격의 조직입니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안 됐다기보다는 확장된 개념으로 양국이 서로 이해한 게 태스크포스"라며 "명칭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