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7일(월)

65년 전 한국보다 잘 살았던 캄보디아, 어쩌다 범죄자 몰리는 가난한 국가가 됐나

캄보디아의 어두운 그림자, 언제부터 시작됐나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을 상대로 한 중국 범죄 조직의 강력 범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납치, 감금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동남아 여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한때 우리나라보다 부유했던 나라가 어떻게 국제 범죄 조직의 온상이 되었을까요. 이러한 현상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고 복잡합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Unsplash


번영에서 비극으로


'캄보디아'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데요. 실제로 캄보디아는 2024년 기준 1인당 GDP가 약 2,000달러(한화 약 286만 원)로, 우리나라의 1인당 GDP 3만 6,024달러(한화 약 5,159만 원)에 한참 못 미칩니다. 2020년에는 아시아의 가난한 국가 리스트에서 1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1950년대만 해도 캄보디아는 우리나라보다 부유한 국가였습니다.


1953년 4월 캄보디아 프놈펜 센트럴 마켓 / Southeast Asia Globe


전쟁 직후 폐허가 된 한국은 캄보디아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기도 했죠. 


캄보디아에서는 50년대 초부터 60년대 중반까지의 시대를 '뉴 크메르시대(New Khmer Era)'라고 부릅니다.


당시 수도 프놈펜 도심은 고층빌딩이 들어섰고, 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폴 포트 / 캄보디아 문서 센터 기록 보관소


킬링필드로 인한 국가 시스템의 붕괴


캄보디아에 본격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75년, 내전 끝에 폴 포트가 이끄는 무장 공산주의 단체 크메르 루주(Khmer Rouge)가 프놈펜을 점령해 정권을 잡으면서부터였습니다.


폴 포트는 급진적인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면서 도시, 지식인, 자본, 교육, 기술을 모두 부르주아의 산물이라 규정해 도시 주민 200만 명 이상을 강제로 농촌으로 이주시켰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1979년까지 "혁명에 반대한다"라는 이유로 지식인, 교사, 의사, 수도승, 외국어 구사자 등을 가차없이 학살했습니다.


2010년 7월 한 관광객이 캄보디아 프놈펜 주에 있는 뚤슬렝 대학살 박물관에 전시된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GettyimagesKorea


안경을 쓴 것만으로도 '지식인'으로 간주되어 죽임을 당하기도 했으며, 부모가 반혁명 세력이라는 이유로 어린 아이들이 함께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크메르 루주 정권은 희생자들을 집단 매장했는데, 학자들은 당시 희생자의 수를 최소 170만 명, 최대 25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당시 캄보디아 전체 인구는 약 800만 명으로, 국민의 약 4분의 1이 목숨을 잃은 셈입니다. 이를 '킬링필드(Killing Field, 죽음의 들판)'라고 부릅니다.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 정권은 단 4년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국가 시스템 전체가 붕괴됐습니다.


지식인, 교사, 의사 등 사회 엘리트들이 목숨을 잃었고, 학교, 병원, 행정기관, 통계청, 심지어 도서관과 기록물까지 불에 타버렸습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 Unsplash


범죄의 온상이 된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후유증뿐만 아니라 1980~1990년대 초까지 내전이 이어졌고, 1990년대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지만 국가 시스템을 재건해야 했기에 다른 개발도상국보다 수십 년 뒤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캄보디아의 범죄 문제 역시 그 비극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크메르 루주는 기존의 법률, 사법 체계, 경찰, 감옥 등 국가 제도를 '부르주아적'이고 '봉건적'인 잔재로 규정하고 거의 완전히 해체하거나 폐지했습니다.


사법 시스템 붕괴, 인적 자원 고갈, 공권력에 대한 불신, 높은 빈곤률과 실업률 등이 결합하면서 캄보디아가 가난과 범죄에서 벗어나기 힘든 나라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싱크탱크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캄보디아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사기 범죄가 캄보디아 GDP의 약 절반에 달하는 연간 125억 달러(한화 약 17조 9,000억 원) 이상을 창출하고 있다고 추산했습니다.


캄보디아 검찰에 기소된 한국인 대학생 살해 혐의 중국인 3명 / 캄보디아 경찰청


이런 상황을 악용해 국제적인 조직범죄단까지 들어오면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 범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중국 범죄 조직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으면서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대상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캄보디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외교부의 여행경보를 반드시 확인하고, 현지에서는 낯선 사람의 접근에 주의하며, 가족이나 지인에게 자신의 위치를 수시로 공유하는 등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앙코르와트의 나라가 하루빨리 범죄의 그늘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