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7일(월)

"탐욕이 만든 불길"... 아리셀 참사, '부자(父子)'가 나란히 징역 15년 받은 이유는

재판부 "매출엔 집착했지만, 안전엔 무감각했다"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화성공장 화재의 책임이 회사 최고경영자 부자에게 돌아갔습니다. 


법원은 "근로자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한 탐욕이 부른 비극"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가장 무거운 형량을 선고했습니다.


뉴스1


지난달 23일 수원지법 형사14부(재판장 고권홍 부장판사)는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와 그의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조차 다하지 않았다"며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 대표는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임에도 "나는 총괄책임자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주요 경영 사안에 구체적 지시를 내린 점 등을 고려할 때 명백히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총괄책임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특히 "리튬전지 폭발 위험성은 이미 수차례 경고된 사안이었고, 아리셀 내부에서도 여러 차례 폭발사고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생산량 확대에만 몰두한 나머지 근로자 보호 의무를 방기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비상구조차 몰랐다"... 구조적 안전 부실이 참사 키워


법원은 사고 당시의 참혹한 현장 상황도 꼬집었습니다.


뉴스1 


판결문에는 "화재 발생 직후 근로자들이 비상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우왕좌왕했고, 일부는 불을 끄려다 목숨을 잃었다. 출입문에는 잠금장치가 있었고, 대피로에는 가벽이 세워져 있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박 대표 부자의 묵인 아래 공장 내부는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방화벽이 철거되고 구조가 임의로 변경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피 통로가 막혀 있었으며, 외국인 근로자들은 비상 탈출구 위치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경영진의 무책임으로 잃었다"며 "그날 아침 일터로 향한 이들은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일갈했습니다.


"생산은 늘려라, 안전은 나중에"... 중대재해처벌법 최고형


화성 공장 화재 '인명 수색' / 뉴스1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래 가장 높은 형량을 선고하며 법 적용 취지를 강조했습니다.


재판부는 "다수의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가벼운 형을 선고한다면 입법 목적이 훼손된다. 기업이 안전 의무를 저버릴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의 존재 이유가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박 대표는 매출 증대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도 근로자 안전에 유의하라는 지시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중언 본부장에 대해서도 "불법 파견 근로자들을 장기간 위험한 환경에 노출시키고,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초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리셀에 벌금 8억 원... 임직원 5명 법정구속


법원은 박 대표 부자 외에도 안전관리 책임자와 생산파트장 등 아리셀 관계자 3명에게 금고형을, 관련 파견업체 대표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또 아리셀 법인에는 벌금 8억 원, 파견업체 두 곳에는 각각 3천만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습니다. 선고 직후 박 대표를 비롯한 5명은 법정에서 즉시 구속됐습니다.


뉴스1 (공동취재)


"예고된 재앙"... 23명 숨지고 8명 다친 비극


지난해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번졌습니다.


리튬전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폭발로 불길은 삽시간에 확산됐고, 근로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숨진 이들 중 20명은 파견근로자로, 대부분 입사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은 초단기 노동자였습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을 "예고된 참사이자 탐욕이 만든 비극"으로 규정했습니다.


"기업의 이윤을 앞세워 인간의 생명을 소모품으로 취급한 결과가 이 참사"라며 "이번 판결이 모든 산업현장에 던지는 경종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