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품에서 자란 아이, 자전거와 함께 사라지다
부모님을 잘 따르고 동생을 먼저 챙기던 아이. 어린 나이에도 자기 이름과 집 주소, 전화번호까지 또렷하게 외울 만큼 영특했던 여섯 살 우정선 양은 20년 전 자전거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2004년 9월 19일, 추석 연휴를 일주일 앞둔 일요일 오후 12시 30분. 경기도 광주시 역동의 한 공터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는 당시 둘째 출산 이후 순대국밥집을 운영하는 큰어머니에게 아이를 자주 맡겼고, 정선 양은 큰집과 친정을 오가며 자라왔습니다.
실종 당일에도 정선 양은 큰어머니 가게 근처 공터에서 자전거를 타며 엄마가 올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식당은 늘 분주했고, 큰어머니는 손님을 받느라 아이를 자주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공터는 동네 사람들이 오가던 곳이었고, 근처에서는 몇몇 주민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정선 양은 갑자기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와 휴지를 챙기더니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아저씨가 눈물을 흘려서 닦아줘야 해." 막걸기를 마시다 흘린 술을 눈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아이는 그렇게 다시 공터로 나갔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후 정선 양은 타던 자전거와 함께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경찰 수사와 잇단 제보, 그러나 남겨진 의문
이날 저녁, 가족은 곧바로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은 다음 날 수사본부를 편성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습니다. 동네 곳곳을 쥐 잡듯 뒤지고, 강과 산까지 훑었지만 아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자전거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무 단서도 남기지 않은 채 증발한 듯 사라진 사건은 출발부터 난항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제보가 희망을 불러왔습니다. 사건 당일 오후 1시쯤, 버스정류장에서 낯선 남성과 대화하는 정선 양을 봤다는 목격담이 있었습니다.
같은 날 저녁 8시쯤에는 실종 장소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식당 앞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봤다는 제보도 들어왔습니다. 또 광주시 초월읍 늑현리의 버스정류장에서 30대 남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신고도 이어졌습니다.
경찰은 당시 공터 근처에서 술을 마셨던 50대 남성 A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그는 우 양에게 과자를 사 주거나 용돈을 주며 안면이 있던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전과 7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습니다. 결국 A씨는 풀려났습니다. 경찰은 사건 초기부터 용의자를 지나치게 특정한 것이 오히려 수사의 폭을 좁혔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가족들은 전단을 제작해 "아이만 돌려보내 주신다면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문구를 내걸고 전국을 돌며 수소문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제보들은 불분명했고, 경찰 수사는 결국 답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은 차츰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아이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남았습니다.
20년 미제로 남은 사건, 희망의 끈을 붙잡다
세월은 2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2023년 봄, 경기도 남한산성 등산로에서 등산객들이 우연히 백골을 발견하며 다시 한 번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매장된 시신은 만 5세 아동으로 추정됐고, 경찰은 곧장 장기 실종아동 목록에 있던 우정선 양을 대조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정선 양도 어금니 충치가 있었던 만큼 유력하게 의심됐습니다.
하지만 정밀 감식 결과 치과 치료 흔적이 다르고, DNA 대조에서도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가족들은 한동안 충격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2024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해, 25세 성인이 되었을 정선 양의 현재 추정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어머니는 "발견된 백골이 내 딸로 판명날까 두렵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혹시나 아직 어딘가에서 살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놓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해외 불법 입양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을 들어, 해외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정선 양이 아직 살아 있다면, 이제는 20대 중반 청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경찰과 가족은 언젠가 본인이 직접 DNA를 등록해 가족을 찾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