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03일(월)

한라산 절벽에 터를 잡은 '천연기념물' 검독수리 가족... 국내서 77년 만의 발견

77년 만의 감동적인 발견, 한라산에 둥지 튼 검독수리 가족


멸종위기 I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검독수리의 번식 둥지가 77년 만에 제주 한라산 절벽에서 발견되었습니다.


17일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올해 4월 제주 한라산 북쪽 절벽에서 대형 맹금류인 검독수리의 번식 둥지를 확인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올해 5월 제주 한라산 북쪽 절벽에서 발견한 검독수리의 모습 / 국립생태원


이번 발견은 지난해 7월 제주대 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이 한라산 북쪽 인근에서 어린 검독수리 한 마리를 구조한 사건과 지역 주민들의 목격담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구조된 한 살 미만으로 추정되는 검독수리는 안타깝게도 3일 만에 폐사했지만 이 사건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본격적인 조사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는 제주 세계유산본부로부터 조사 허가를 받아 올해 4월부터 한국조류보호협회 제주지회 회원들과 함께 검독수리 서식지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한라산 북쪽 지대 약 90m 높이의 절벽 그중에서도 3분의 1 지점에서 지름 약 2m, 높이 약 1.5m에 달하는 검독수리의 둥지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연구진은 이후 5월에 약 200m 떨어진 장소에서 망원 카메라를 활용해 둥지에 검독수리 암수 한 쌍과 새끼 한 마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국립생태원


둥지는 마른 나뭇가지를 쌓아 올려 만들어졌으며 내부에는 마른 풀잎과 푸른 솔가지가 깔려 있었다고 종복원센터 측은 설명했습니다.


연구진은 암수 모두 최소 6년생 이상의 성조(어른 새)로 추정했으나 새끼의 성별은 외형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7월 조사에서는 검독수리 가족이 이미 둥지를 떠난 것(이소)을 확인했습니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77년 만의 번식 둥지 발견


검독수리는 전국적으로 매년 10마리 내외로 관찰되어 왔지만 번식 둥지가 발견된 것은 1948년 이후 처음입니다.


검독수리 / 국가유산포털 홈페이지


당시 미 육군 장교 로이드 레이먼드 울프가 제보자 김훈석씨와 함께 경기 예봉산 정상 인근에서 성조를 발견했으며 같은 시기 경기 천마산에서도 새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둥지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울프는 이 관찰 기록을 1950년 10월 미국의 저명한 조류 학술지인 '디 오크(The Auk)'에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강승구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발견된 개체는 북동 러시아 등에서 월동을 위해 한국을 찾아온 철새 무리였다"며 "이번에 발견된 새들은 우리나라에 정착해 사는 텃새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진은 검독수리가 번식지를 쉽게 옮기지 않는 특성을 고려할 때 앞으로도 같은 장소에서 번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또한 제주도가 육지보다 서식환경이 더 적합하다고 분석했는데 윤종민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조류복원팀장은 "산림이 많은 육지와 달리 제주는 방목지와 초지가 많다"며 "노루, 꿩 등을 먹이원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검독수리는 수리목 수릿과에 속하는 대형 맹금류로 날개를 펴면 2m가 넘는 크기를 자랑합니다.


국립생태원


국내에서는 주로 겨울철 전국의 산야 및 습지 주변에서 소수만 관찰되어 왔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 북반구에 서식합니다.


이들은 사슴, 토끼, 고라니 등의 포유류와 오리류, 꿩 등의 조류를 사냥하며 동물 사체도 먹습니다.


1, 2월에 1~4개의 알을 낳으며, 포란 기간은 44~45일, 육추 기간은 70~102일에 달합니다.


국립생태원은 이번 검독수리 번식 둥지 발견을 계기로 제주도 등 유관 기관들과 협업해 서식지 보전을 강화하고 번식 상황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번식 개체의 기원 연구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창석 국립생태원장은 "이번 검독수리의 번식 둥지 발견은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며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서식지 보전과 중장기적인 보호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