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희망의 빛을 보다
농구 대회 중 통증 완화를 위해 이부프로펜 두 알을 복용했다가 예상치 못한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희귀질환인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tevens-Johnson syndrome)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 13살의 소년. 한 달 뒤 극적으로 눈을 떴지만 이미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이후 20년 동안 각막 이식을 10번이나 받았지만 시력이 다시 떨어지는 것이 반복돼 절망에 빠졌다. 이런 그에게 또 한번의 수술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치아-눈 수술(tooth-in-eye surgery)' 혹은 골치아각막보철술(Osteo-odonto keratoprosthesis)이라 불리는 수술이다.
지난 2월 CTV는 캐나다인 최초로 '치아-눈 수술'을 받게 된 브렌트 채프먼(Brent Chapman, 33)의 사연을 보도했다.
채프먼이 받은 수술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이름처럼 자신의 치아에 렌즈를 삽입해 눈에 이식하는 획기적인 시도다.
이번 수술은 2단계로 나뉜다. 먼저 환자의 송곳니를 하나 발치한 뒤 그 안에 작은 렌즈를 삽입하고 이를 볼 안쪽에 이식해 안정적인 조직으로 감싸도록 한다. 약 3개월 뒤에는 이 치아를 볼 안에서 꺼내 눈 앞쪽에 봉합해 완성하는 방식이다.
수술을 집도하는 각막 전문의 그렉 몰로니(Greg Moloney) 박사는 이 기술이 눈의 앞쪽, 즉 투명한 창 역할을 하는 부위를 다시 만들어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치아는 작고 단단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시력을 담당하는 작은 플라스틱 렌즈나 망원경 형태의 삽입물을 고정하는 데 이상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수술에는 몰로니 박사 외에도 호주에서 온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 섀넌 웨버(Shannon Webber) 박사도 함께한다.
'치아로 만든 눈'? 현실이 된 의학 기술
몰로니 박사는 수술이 성공하고 환자의 망막과 시신경이 건강하다면 거의 정상에 가까운 시력 회복이 가능하다고 봤다. 브렌트와 같은 환자들에게 실현 가능한 희망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완성된 눈은 일반적인 눈과는 다른 형태를 띤다. 입 안쪽 점막이 눈을 덮기 때문에 외형은 분홍빛을 띠고 가운데 작고 어두운 점이 있는 모습이 된다. 채프먼은 외형적인 변화보다 기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수술을 통해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고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년 전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처럼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시력을 되찾는다면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많다고 말하며, 그것만으로도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치아-눈 수술은 전 세계 10개국에서 수십 년간 시행되어 온 방식으로, 성공률도 높은 편이다. 2022년에 발표된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해당 수술을 받은 환자의 94%가 27년이 지난 후에도 시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7년에도 수년간 시력을 잃고 살았던 호주 남성 존 잉스(John Ings, 72)는 같은 방식의 '치아-눈 수술'을 받은 후 시력을 되찾은 바 있다.
어릴 적 다친 눈에 헤르패스 감염까지 겹치며 양쪽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였지만 치아를 이식해 만든 인공 각막 덕분에 수술 3개월 후 아내의 얼굴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당시에도 섀넌 웨버 박사가 수술을 집도했으며, 그는 자신의 의료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