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가운데, 체육계에 그간 만연했던 성폭력 실태가 최근 논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거 테니스 선수 출신 김은희 씨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8일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를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세종은 심석희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며 추가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심석희 측에 따르면, 심석희는 17살이던 지난 2014년 이후 조 전 코치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에 시달렸다.
운동 코치가 미성년자 제자를 성폭행한 사건. 이는 지난 2016년 세간에 알려진 테니스 선수 출신 김은희 씨의 사연과 비슷하다.
김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1년 약 1년간 당시 코치에게 네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뽀뽀'가 가장 수위 높은 단어였던 어린 소녀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코치는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 혐의로 사직 처리됐고 다른 여러 학교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갔다.
2016년, 김씨는 한 테니스 대회장에서 가해자와 우연히 마주친다. 상대방은 선글라스를 끼고 버젓이 시합에 출전하는 모습이었다. 15년이 흐르고 나서야 김씨는 코치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김씨는 "당시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광주여성의전화 등 4개 기관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도움을 준 기관은 광주여성의전화뿐이었다"고 밝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김씨는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스포츠비리신고센터에도 각각 신고 메일을 보냈다.
며칠이 지나도록 수신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김씨는 "담당 조사관이 배정되는 데만 보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한 기관 담당자는 김씨에게 이길 수도 없는 사건을 왜 다시 꺼내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김씨는 "혼자 고소를 준비하며 이들이 '누구를 위한 기관인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를 끊임없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외롭고 긴 싸움 끝에 결국 법원은 가해자 코치에게 징역 10년형과 12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가해자의 상고심 항소는 기각됐고 지난해 7월 코치는 징역 10년형이 확정됐다. 처음 고소장을 작성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수도 없이 되새겨야 했던 지난 2년간 재판을 포기할까 많이도 고민했다는 김씨. 단 한 가지 생각이 그를 붙잡았다.
김씨는 "'반드시 승소해서 다른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는 사례를 만들겠다'는 다짐 하나로 시작한 일이기에 외로운 싸움을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씨뿐 아니다. 국내 체육계에는 성폭력 문제가 만연하며 이를 은폐시키는 구조가 굳게 고착돼있다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얼마 전 불거진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폭로 사태도 해당된다.
이에 대해 여성 체육 전문가들은 한국 체육계의 보수적·폐쇄적 분위기 하에서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돼있으며, 애초에 여성 스포츠인들이 자기 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