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봉제 공장'이라고 하면 과거에는 빽빽하게 들어선 미싱기 앞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쉴 새 없이 옷을 만들어내던 노동집약적 생산 현장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글로벌 의류 생산기지는 원단 개발과 직조, 염색, 봉제에 이르기까지 친환경 에너지와 첨단 연구개발(R&D),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생산관리 체계를 결합한 '복합 제조 거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변화의 최전선에는 글로벌 의류·신발 제조기업 영원무역이 방글라데시 차토그램 지역에 조성한 KEPZ(Korean Export Processing Zone·한국수출가공공단)가 있다.
영원무역 KEPZ 공장내부 / 사진 제공 = 영원무역그룹
이곳은 단순한 제조시설을 넘어 태양광 발전, 대규모 녹지 생태계, 의료 및 교육시설을 두루 갖춘 친환경 융복합 산업단지로 진화 중이다. 이러한 KEPZ의 진화 방향은 성기학 영원무역그룹 회장의 경영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그동안 성 회장은 "기업의 성장은 사회 및 지역 공동체와 함께할 때 더욱 의미가 있다"고 강조해 왔다.
영원무역은 이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해외 생산기지를 단순한 저비용 제조 거점이 아닌, 기업과 임직원,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공유가치창출(CSV)'의 현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실과 바늘에 친환경을 더하다... 원단부터 완제품까지 '수직계열화'
영원무역이 가진 독보적인 제조 경쟁력의 바탕은 완제품 봉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직물과 니트, 충전재 등 원자재 생산 역량을 탄탄히 갖추고 디자인부터 연구개발, 직조, 염색·가공, 프린팅, 봉제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로 연결한 '수직계열화(Vertical Integration)' 구조를 확립했다.
1980년 방글라데시에 첫 해외 의류공장을 설립한 이후, 겨울 의류용 폴리에스터 충전재의 현지 생산과 직조·염색·후가공 체계까지 단계적으로 구축하며 생산 기반을 확장해 온 결과다.
영원무역 KEPZ 공장내부 / 사진 제공 = 영원무역그룹
이처럼 구축된 공급망은 외부 변동성 속에서도 안정적인 납기와 품질 관리를 뒷받침하며, 기능성 소재의 연구개발 성과를 생산 현장에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생산에 투입되는 친환경 소재의 비중을 높이는 데도 속도를 내고 있다.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원단의 채택을 확대하고 보온재용 폴리에스터에도 재활용 소재 사용을 늘리는 한편, 방글라데시 생산기지에서는 해외 선도 화학회사와 협력해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칩과 섬유를 직접 생산하는 설비 도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제품 포장 과정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발수 가공에는 불소수지를 포함하지 않은 C0(C Zero) 기반 물질을 적용하고 있다. 프린팅 잉크와 접착제에도 휘발성 유기용매 대신 수계(Water-based) 재료 사용을 확대하는 등 공정 전반의 환경 부담을 낮추고 있다.
이 같은 친환경 소재와 공정 전환은 환경경영 시스템 강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영원무역은 최근 방글라데시와 베트남 소재 공장 6곳에서 국제 환경경영 표준인 ISO 14001 인증을 추가로 획득했다. 기존 방글라데시 공장 2곳을 포함하면 현재 인증을 보유한 생산공장은 총 8곳이다.
ISO 14001은 기업이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영향을 체계적으로 식별·관리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체계를 갖췄는지를 검증하는 국제표준이다.
지붕은 태양광 발전소, 마당은 숲과 호수... 자연과 숨 쉬는 공단
KEPZ의 친환경 전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공장 지붕을 가득 덮은 태양광 발전설비다. 현재 KEPZ에는 총 43MWp 규모의 태양광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으며, 2025년 기준 공단 전체 사용 전력의 약 61%를 이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특히 발전량이 풍부한 낮 시간에는 공장에서 사용하고 남은 잉여 전력은 방글라데시 국가전력망에 판매하고 있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할 수 있는 현지 여건에서 이러한 자체 발전 역량은 생산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외부 전력 구매 부담과 탄소배출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루프탑 태양광 시설이 완비된 영원무역그룹의 KEPZ 공단 전경 / 사진 제공 = 영원무역그룹
영원무역은 이러한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베트남·인도·우즈베키스탄·엘살바도르 등 전 세계 생산기지로 확대해 2030년까지 총 100MWp 규모로 늘릴 예정이다.
대규모 조림사업과 수역 조성을 통해 과거 식생이 부족했던 부지를 녹지와 수역으로 바꾼 점도 눈에 띈다. 영원무역은 1999년부터 20년 이상 KEPZ 전체 부지의 약 52%에 해당하는 150만평을 친환경 녹지로 조성하고 있다.
현재 공단에는 약 400종, 290만 그루의 수목이 식재돼 있으며 25개의 수역이 조성돼 있다. 영원무역은 향후 빗물 저장 능력을 6억갤런 이상으로 확대하고 KEPZ 내 500여 종의 동식물을 보호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22년 공개된 생물다양성 조사 보고서에는 나비 86종과 조류 159종을 비롯해 포유류·파충류·양서류 등 총 292종의 동물이 기록됐다.
영원무역의 환경경영 방침인 'Blue & Gree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이 수역들은 다양한 생물의 서식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우기에 빗물을 저장해 침수 부담을 완화하고 지하 대수층을 보충하는 등 주변 생태계를 지탱하는 친환경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다.
제조단지 넘어 의료·교육 거점으로... 사람을 향한 상생 투자
KEPZ의 ESG 전략은 환경을 넘어 임직원과 지역사회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투자로 더욱 깊숙이 확장된다.
영원무역은 2025년 공단 내에 1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인 'KEPZ 트러스트 병원'과 '치타공 간호대'를 개원했다. 2026년 5월 기준 200여 명의 의료진이 상주하며 내과·안과·치과·소아과·산부인과 등 9개 진료과를 운영 중이다.
이 병원은 영원무역 임직원과 가족뿐 아니라 응급상황에 놓인 인근 지역 주민에게도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지역 내 주요 의료기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현재 59명이 재학 중인 치타공 간호대 역시 향후 총 800명 규모로 정원을 늘려 전문 간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방침이다.
KEPZ 메디컬 단지는 연세의료원과의 협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영원무역은 향후 4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과 의과대학을 추가로 설치해 진료와 의료인력 양성을 아우르는 의료·교육 기반을 완성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교육 인프라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영원무역은 오는 2027년 약 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KEPZ 섬유·패션 전문대학(KEPZ Textile & Fashion Institute)'을 설립할 예정이다.
섬유·패션 분야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통해 현지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인근에 들어설 R&D(연구개발) 센터와 연계해 교육과 연구개발 역량을 함께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영원무역이 KEPZ에서 추진해 온 변화는 개별 친환경 사업이나 시설 건립에 머물지 않는다. 원자재 생산부터 완제품 제조까지 연결된 생산 인프라 위에 재생에너지와 생물다양성, 의료·교육시설을 결합하며 기존 해외 생산기지의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공장 지붕에서는 전력이 생산되고, 공단 안에는 숲과 수역이 자리한다. 생산시설 인근에서는 환자를 치료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한다. 생산 효율과 비용 경쟁력을 넘어 지역사회와 환경까지 함께 고려하는 복합 산업단지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영원무역그룹 성기학 회장 / 사진 제공 = 영원무역그룹
성기학 회장의 상생과 공유가치 철학을 바탕으로 20년 넘게 변화를 이어온 KEPZ는 이제 옷을 생산하는 공장을 넘어 에너지와 기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미래형 제조 생태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