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권위의 미식 가이드로 인정받는 미쉐린가이드가 각국 관광청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지원받아 가이드북을 발간한 것으로 밝혀져 평가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22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미쉐린 가이드가 지난 15년간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스라엘, 미국 등 여러 국가의 관광청으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고 해당 국가의 미쉐린 가이드를 발간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데일리메일은 이러한 금전적 협력 관계가 레스토랑 평가의 객관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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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한국관광공사는 2016년 첫 출간 이후 4년에 걸쳐 총 100만 달러(한화 약 14억 원)를 미쉐린 측에 지급했으며, 그 결과 24개 레스토랑이 별을 받았습니다.
또한 CNN의 보도를 인용해 태국 관광청의 경우 2017년 미쉐린 가이드와 제휴를 맺고 440만 달러(한화 약 62억 원)를 지급했고, 17개 레스토랑이 별을 획득했다고 전했습니다.
미쉐린 가이드의 수익 구조 변화는 2010년 이후 본격화됐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2011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쉐린 가이드는 당시 연간 2,400만 달러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으며, 2015년에는 이 수치가 3,000만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으로 인쇄 책자 매출이 급감하면서 재정이 악화된 미쉐린은 새로운 수익 모델로 관광청과의 제휴를 선택했습니다.
MICHELIN Guide
음식 평론가들과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휴 관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2018년까지 전 세계 모든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기록을 세운 음식평론가 앤디 헤일러는 "관광청은 돈을 냈고 그 대가로 별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영국 BBC 요리 경연 프로그램 '마스터셰프'의 2020년 우승자 토마스 프레이크는 평가 기준의 일관성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베트남 길거리 음식 가판대도 런던 고급 레스토랑도 같은 '별 하나'를 받는다"며 "기준이 명확히 공유되지 않는다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경영대학 연구원은 더 타임스에 "정부, 여행사, 여타 관련 기관과 지나치게 협력하면 신뢰성은 물론 다른 기관이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의문이 제기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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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란에 대해 미쉐린 측은 정부로부터 받는 돈이 주요 수입원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제휴 관계가 레스토랑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느나는 입장입니다.
미쉐린 제휴담당자인 줄리아나 트윅스는 데일리메일에 "미쉐린은 모든 국가나 도시를 상대로 가이드를 만들지 않으며, 모든 계약이 가이드북 발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크리스 왓슨 전 미쉐린 가이드 심사위원 또한 "미쉐린은 해당국 외식시장 수준을 감안해 레스토랑에 부여할 별 개수를 결정한다"며 논란을 일축했습니다.
그는 "(미쉐린 가이드도) 어쨌든 사업은 사업"이라면서 "가이드가 각국을 미식 관광지로 부각시키고 국가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옹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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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쉐린 가이드는 1900년 프랑스 타이어 제조사 미쉐린이 자동차 운전자를 위한 여행 안내서로 시작했습니다. 1926년부터 음식이 맛있기로 정평이 난 호텔에 별을 붙이기 시작했고, 이후 요리 수준이 높은 레스토랑에 최대 3개까지 별을 부여하는 현재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오랫동안 유럽에서만 발행되다가 2006년 뉴욕판, 2007년 도쿄판을 발행하면서 아시아와 북미로 유통망을 확대했습니다.
현재 미쉐린 가이드는 25개국에서 발행되고 있으며, 별을 받은 레스토랑은 3,000곳 이상입니다. 2025년 기준 한국에서는 서울 37곳, 부산 3곳 등 총 40곳의 음식점이 미쉐린 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