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계의 젊은 리더십을 상징하는 두 인물은 바로 정기선 HD현대 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입니다.
하지만 2025년 10월, 두 사람의 자리는 과거와 '살짝' 달라져 있습니다. 정기선 회장은 부회장 직함을 벗어던지고 당당히 회장 자리에 오르며 실질적인 '오너 경영자'의 자리에 섰습니다.
반면 김동관 부회장은 아직은 '건재한' 김승연 회장이 있기에 부회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느낌은 살짝 다른 게 사실입니다.
정기선 HD현대 신임 회장 / 사진제공=HD현대
1980년대 초반생 동세대인 두 사람은 각자의 그룹에서 '3세 경영'의 기수로서, 기술과 전략, 그리고 책임의 무게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보는 단순한 '오너 경영 복귀'가 아니라, 산업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세대교체로 평가받습니다.
정기선 회장은 2025년 10월, HD현대의 새로운 수장으로 공식 취임했습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인 그는 30년간 이어진 전문경영인 체제를 마무리하며 오너 경영 체제를 복원했습니다. 그 복귀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기술 중심의 미래 조선'으로의 진화였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그룹의 체질 개선을 추진했습니다. 조선업의 주력 모델을 '건조 중심'에서 '기술 플랫폼'으로 전환하고, 조선소에 AI 기반 자동화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인공지능이 설계와 용접, 품질검사를 수행하는 'AI 조선소'를 세계 최초로 시범 가동 중이며, 이는 정 회장이 직접 주도한 프로젝트입니다.
또한 그는 조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수소·해양에너지 분야로 눈을 돌렸습니다. 수소 생산·저장·운송 전 과정에 걸친 '수소 밸류체인'을 구축하며, 중공업을 넘은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HD현대를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정 회장은 그룹 내에서 "기술이 곧 기업의 언어"라고 자주 말합니다. 그에게 기술은 단순한 생산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철학이자 정체성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의지'와 '실행력'으로 산업을 일으켰다면, 정기선 회장은 '기술'과 '데이터'로 미래를 설계하는 세대입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 뉴스1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그룹의 얼굴이자, 김승연 회장의 경영 철학을 잇는 후계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는 태양광으로 시작해 우주항공, 방산, MRO(정비·부품)까지 그룹의 신성장 축을 직접 개척했습니다. 특히 한화솔루션을 글로벌 태양광 리더로 키운 뒤, 방산 3사를 통합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미래형 산업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김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과감하면서도 치밀합니다. 그는 '현장의 숫자'를 누구보다 중시합니다. 실제 글로벌 방산 수주 회의나 M&A 협상 자리에서도 기술 세부항목과 원가 구조를 직접 검토하며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한화그룹 관계자들 전언에 의하면, 김 부회장은 '뭉터기'로 엮인 자료를 직접 들고다니며 틈이 날 때마다 읽는다고 합니다. 숫자에 대한 파악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런 분석형 리더십은 한화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방산 부문은 2024년 한 해에만 수출 수주액이 17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의 흑자 전환도 그가 주도한 구조 재편의 결과였습니다.
사진제공=HD현대
그의 또 다른 차별점은 ESG 경영입니다. 김 부회장은 탄소중립, 사회적 책임, 투명경영을 핵심 키워드로 제시하며,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했습니다. 'ESG는 보고서가 아니라 문화'라는 그의 말처럼, 한화그룹의 경영 시스템 곳곳에는 지속가능성이 녹아 있습니다.
이 같은 행보는 김승연 회장의 '사람 중심 경영'을 잇되, 한층 글로벌화된 감각으로 확장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진보'라는 말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정기선과 김동관, 두 사람의 공통점은 '기술 중심의 경영자'라는 점입니다. 정 회장은 인공지능·조선 기술로, 김 부회장은 방산·에너지 기술로 미래를 설계합니다. 둘 다 실무 경험을 중시하며, 단순히 경영권을 승계받은 3세가 아니라 '전략가형 경영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접근법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정기선 회장은 '내부 혁신형'입니다. 그는 전통산업의 근간을 기술로 재해석하며, 제조와 생산의 본질을 미래형으로 변환하고 있습니다. 그의 중심은 조선소, 즉 현장입니다.
반면 김동관 부회장은 '확장형 리더'입니다. 그는 기존 산업의 외연을 넓혀 신사업과 글로벌 시장으로 돌파구를 찾습니다. 정 회장이 HD현대를 기술 회사로 재정의했다면, 김 부회장은 한화를 글로벌 안보·에너지 기업으로 재편한 셈입니다.
이제 이들은 한국 산업의 '차세대 지도자'로 불립니다. 정기선 회장이 이끄는 HD현대는 AI 조선과 수소 산업으로,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는 방산과 우주항공으로 각각 세계 무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두 그룹의 산업이 서로 다른 영역에 있지만, 그 근저에는 '기술과 혁신으로 미래를 설계한다'는 공통된 철학이 흐릅니다.
뉴스1
그런데 최근 들어 두 사람의 노선은 다시 '조선'에서 교차하고 있습니다.
한화가 인수한 한화오션은 조선 기술력 강화를 위해 미국·유럽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필리핀 수빅조선소(한화 필리조선소)를 거점으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HD현대가 집중하고 있는 AI 조선소·친환경 선박 분야와 맞닿는 구도입니다. 다시 말해, 바다 위의 경쟁이 현실화된 셈입니다.
정기선이 기술로 조선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면, 김동관은 자본과 전략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키워 맞서고 있습니다.
AI와 수소의 HD현대, 방산과 조선의 한화. 이제 두 사람의 경쟁 무대는 우주가 아니라 다시 ‘조선'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점, 회장 자리에 올라 직접 키를 잡은 정기선이 먼저 치고 나가랴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조선의 미래, 그리고 재계 세대교체의 향방을 가를 경쟁에서, 승자는 단 한 명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