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거리를 물들이는 은행나무, 그 특별한 이유
가을이 깊어가면서 서울 거리는 노란 은행잎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특유의 냄새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은데요.
그런데도 왜 서울의 가로수 중 은행나무가 이토록 많은 걸까요? 그리고 그 특유의 냄새는 무슨 성분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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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로수의 35%, 은행나무가 차지하는 이유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가로수 중 약 35%가 은행나무입니다.
2022년 기준으로 서울시 전체 가로수 약 30만 그루 중 10만 그루 이상이 은행나무로, 단일 수종으로는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은행나무가 서울의 대표 가로수로 선정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은행나무는 대기오염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강합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대기오염이 심각했던 1970-80년대, 서울시는 매연과 먼지에 강한 은행나무를 대대적으로 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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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은행나무는 수명이 길고 병충해에 강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은행나무는 1,000년 이상 살 수 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진화의 과정에서 거의 변하지 않은 고대 수종입니다.
이런 생명력 덕분에 도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며 성장합니다.
화재에 대한 저항성도 은행나무가 선호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은행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화재 발생 시 불이 번지는 속도가 느리고, 수분 함량이 높아 화재 확산을 늦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은행나무 열매의 악취, 그 정체는?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특유의 냄새는 많은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습니다. 이 냄새의 주범은 바로 부티르산(butyric acid)이라는 성분입니다. 부티르산은 은행나무 열매의 외피에 포함되어 있으며, 썩은 버터나 구토물과 비슷한 냄새를 풍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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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 냄새가 나는 열매는 오직 암나무에서만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은행나무는 수나무와 암나무가 따로 있는 자웅이주(雌雄異株) 식물인데, 가로수로 수나무를 심으면 열매가 열리지 않아 냄새 문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나무의 성별을 구분하는 기술이 부족했고, 암수 구분 없이 심다 보니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서울시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로 심는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제한하고 있으며, 기존 암나무 중 일부는 다른 수종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열매가 떨어지는 시기에 신속한 청소 작업을 통해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은행나무의 생태학적, 문화적 가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은행나무는 생태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습니다. 특히 절이나 궁궐 주변에 많이 심어져 왔으며, 단풍이 아름답고 수형이 웅장하여 조경적 가치도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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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은행나무 열매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되며, 구운 은행은 간식으로도 즐겨 먹습니다.
은행에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여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서울의 은행나무는 도시 생태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도시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기여합니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서울의 대표적인 가을 풍경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불편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서울의 은행나무. 그 특유의 냄새에 불평하기보다는 도시 환경을 위해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은행나무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