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의 미국 로비 전쟁, 4년 새 두 배 증가한 500억 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미국에서 펼치는 로비 활동 규모가 최근 4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미국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에는 로비 금액이 약 500억 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이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자사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1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공개한 2020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미국 상원 로비 공개(United States Senate Lobbying Disclosure)에 제출된 로비 보고서(LDA Reports) 조사 결과, 로비를 한 기업은 52곳이었으며 지난해 로비 금액은 총 3532만 달러(약 496억 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CEO스코어
꾸준히 증가하는 한국 기업의 로비 지출
국내 기업들의 대미 로비 금액은 2020년 1,553만 달러(약 218억 원)에서 시작해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2021년에는 2,161만 달러, 2022년에는 2,380만 달러, 2023년에는 2,492만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대선이 치러진 2024년에 로비 금액이 전년 대비 41.8% 급증한 3,532만 달러(약 496억 원)를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미국의 각종 관세 부과가 가시화된 올해 상반기에도 로비 지출은 1,966만 달러(약 276억 원)로, 전년 동기(1,747만 달러) 대비 12.6% 증가했습니다.
제출된 로비 보고서 건수 역시 2020년 127개에서 2024년 288개로 크게 늘어났으며, 올 상반기에만 161개의 보고서가 제출되었습니다.
사진=인사이트
삼성·SK·한화, 로비 활동 선두주자
2023년 기준으로 로비에 1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한 한국 기업 그룹은 총 7곳으로 나타났습니다.
삼성이 862만 달러(약 121억 원)로 가장 많은 금액을 지출했으며, 이는 삼성전자, 삼성 반도체, 삼성SDI, 이매진 등 계열사들의 로비 금액을 합산한 수치입니다.
삼성의 로비 지출은 간접지출 256만 달러와 직접지출 606만 달러로 구성되었습니다.
삼성에 이어 SK(708만 달러), 한화(605만 달러), 현대차(478만 달러), 쿠팡Inc(331만 달러), LG(134만 달러), 영풍(100만 달러) 순으로 로비 금액이 많았습니다.
이외에도 포스코(96만 달러), 한국무역협회(49만 달러), CJ(40만 달러) 등이 미국에서 활발한 로비 활동을 펼쳤습니다.
사진제공=한화그룹
한화, 4년 새 로비 금액 10배 이상 급증
특히 주목할 만한 기업은 한화입니다.
한화는 2020년 45만 달러에 불과했던 로비 금액이 2024년에는 605만 달러로 무려 1,244.4% 급증했습니다. 이는 조사 대상 기업 중 가장 큰 증가율을 보인 것인데요.
이러한 급증은 한화큐셀이 2023년 미국에서 대규모 태양광 공장 증설을 발표한 이후, 사업 확장을 위해 로비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결과로 분석됩니다. 또 한화필리조선소도 지난해 12월 인수 이후 미국 내 로비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 사진=한화그룹
삼성 역시 같은 기간 504만 달러에서 862만 달러로 로비 금액이 71.0% 증가했습니다. 이는 삼성전자가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고, 삼성SDI도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을 추진하는 등 미국 내 대규모 투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누적 로비 금액, 삼성·SK·현대차 순
2020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의 누적 로비 금액을 살펴보면, 삼성이 3,964만 달러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SK(3,598만 달러), 현대차(2,357만 달러), 한화(1,298만 달러), 쿠팡Inc(799만 달러)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CEO스코어는 "미국 대선 시기와 맞물려 새 정부 출범 및 정치 리스크 대비, 미국 산업 정책 대응, 대미 투자 확대 등의 영향으로 대미 로비 금액이 증가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했습니다.
CEO스코어
미국 시장에서의 생존 전략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 로비는 이익 단체의 의견이나 요구를 정부나 의회에 전달하는 합법적인 활동으로 관련 내역을 LDA에 보고하기만 하면 됩니다.
한국 기업들의 로비 금액 증가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등 자국 산업 보호 정책과 무역 갈등 속에서 자사의 이익을 지키고 사업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태양광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활발히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에게 미국 정부와의 관계 구축은 중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 대선 이후에도 계속되는 불확실한 정치 환경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인한 관세 리스크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대미 로비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