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대접 속 열린 한일 정상 만찬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23일 도쿄 정상회담 뒤 2시간 동안 이어진 만찬에서 한일 협력의 새로운 전기를 다졌습니다.
단순한 외교 행사를 넘어 일본 정부가 한국 대통령을 위해 이 정도 수준의 맞춤형 만찬을 준비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이시바 요시코 여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특히 이날 만찬에서 이시바 총리는 이 대통령의 자전적 에세이 '그 꿈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의 일본어 번역판을 읽었다며 사인을 요청했습니다.
두 정상 모두 과거 비주류 정치인 출신으로, 수많은 역경을 딛고 국민 선택을 받아 정점에 오른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시바 총리가 이 대통령의 정치 여정에 깊이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돗토리의 맥주와 안동의 소주, 그리고 맞춤형 메뉴
두손 맞잡은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 / 뉴스1
만찬 테이블에는 이시바 총리의 고향 돗토리현에서 만든 다이산 맥주와 이 대통령의 고향 경북 안동을 대표하는 안동소주가 함께 올랐습니다.
일본이 한국 대통령의 고향까지 고려해 준비한 술을 테이블에 올린 것은 이례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메뉴 역시 상징성을 품었습니다. 카레를 유난히 좋아하는 이시바 총리는 자신이 즐겨 먹는 '이시바식 카레'를 직접 메뉴에 포함시켰고, 안동찜닭과 김치를 곁들인 한국식 장어구이까지 더해 양국 우정의 의미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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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메뉴' 역시 이 대통령의 고향을 대표하는 메뉴였다는 점에서 일본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찬이 끝난 뒤 두 정상 내외는 통역만 대동한 채 30분가량 별도의 친교 시간을 이어가며 관계의 온기를 더했습니다.
책 사인 요청이 남긴 의미
외교가는 이번 만찬을 두고 "일본이 한국 대통령을 위해 이토록 극진한 대접을 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이시바 총리가 한국 대통령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사인까지 요청한 장면은 단순한 외교적 예우를 넘어, 두 정상이 개인적 공감대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재일 교포 간담회에서 간첩 조작 사건과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해 공식 사과를 밝힌 점까지 맞물리며, 이번 만찬은 과거의 상처를 넘어 미래 협력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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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교포 향한 공식 사과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만찬에 앞서 열린 재일 교포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1975년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이 사건은 김기춘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의 주도로 재일 교포 21명이 간첩 누명을 쓴 사건으로, 이후 법원에서 전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이 대통령은 "민주화 여정 속에 많은 재일 교포가 억울한 피해자로 고통을 겪었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국가 폭력의 희생자와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공식적으로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재일동포 간담회에서 인사하는 이재명 대통령·김혜경 여사 / 뉴스1
이어 1923년 관동 대지진 직후 수천 명의 조선인이 살해된 '간토 대학살'도 언급하며 "아픔과 투쟁이 반복된 굴곡진 대한민국 역사의 매 순간마다 동포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 정부는 여러분의 애국심을 반드시 기억하고 보답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