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격인하 압박에 고충 토로하는 식품·외식업계
고물가로 서민 경제가 어렵다는 고충에 돌연 식품·외식업계가 '뭇매'를 맞고 있는 모습입니다.
내수침체, 환율·관세 부담, 원가 상승이라는 3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정부 여당의 가격인하 압박까지 더해지며 식품·외식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6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서울 서초구 aT센터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 종합상황실에서 열린 물가대책TF 현장방문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물가대책TF 최기상 의원, 유동수 위원장, 김병기 대표 직무대행, 강형석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홍문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2025.7.16/뉴스1
지난 11일과 12일, 양일간 더불어민주당 물가대책 태스크포스(TF)와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는 식품사 16곳과 외식업체 11곳을 차례로 불러 물가안정화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당정은 기업들에게 가격 인상 자제를 당부했는데요.
민주당 유동수 물가대책TF 위원장은 "우리나라 물가 수준이 OECD 회원국 중에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침체된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가공식품 물가 안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설탕 시장의 92%를 차지하는 CJ 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은 협의를 통해 7월 B2B 설탕 가격을 4%대 인하했다"며 "제당 3사의 자발적 가격 인하를 계기로 많은 식품 기업들이 가공식품 물가 안정 노력에 동참해 주시기를 간곡히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물가대책TF 위원장이 지난 7월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aT센터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 종합상황실에서 열린 물가대책TF 현장방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2025.7.16/뉴스1
하지만 식품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 환율 및 관세 인상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커지는 상황에서 가격 인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앞서 지난 5일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1% 상승했지만,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지수는 이보다 높은 3.5% 상승했습니다.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며 물가 안정 대책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당정은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가공식품 물가 안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국민 체감 물가 안정을 위해 식품업계가 가공식품 물가안정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하고 나선 건데요.
이에 식품업계는 이달에도 소비자물가 안정을 위한 가공식품 할인행사를 지속하고 있다고 답하는 한편,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박병선 통게청 물가동향과장이 지난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5년 7월 소비자물가동향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6.52로 전월대비 0.2% 상승하였고, 전년동월대비로는 1.1% 상승했다. 2025.8.5 /뉴스1
식품업계, 원가 부담 등으로 올해 실적 부진 시달려
실제로 식품·외식업계는 올해 들어 더욱 심각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의 2분기 영업이익률은 전년 대비 34%나 감소했으며, 롯데웰푸드와 롯데칠성음료도 각각 27.3%, 4.3%의 수익성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이른바 매출 '3조 클럽'으로 불리는 CJ제일제당, 오뚜기, 농심, 롯데, 대상 등 대형 식품사들의 최근 영업이익률도 5% 안팎에 머물러 있어 원가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업계에서는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30조원 예산을 시장에 투입해 통화량이 늘어남에 따라 물가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식품업계 기업들을 불러들여 가격 단속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나아가 온라인 플랫폼의 이른바 '단가 후려치기'와 배달플랫폼 수수료 등 가격 인상 요인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가격을 통제하면 본사보다는 오히려 가맹점주 등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뉴스1
식품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고려한 균형 잡힌 물가안정 대책 나와야
업계에서는 정부가 가격 인하 압박 '채찍'만 들 게 아니라, 지원책 마련 등 '당근'도 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K푸드' 열풍으로 식품 산업이 다른 제조업보다 빠르게 성장해 우리나라 미래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만큼, 식품사들의 시설 투자, 해외 진출 역량 축적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식품업계의 실적이 악화되면 제품 연구 개발, 신규 투자 등도 어려워져 장기적으로는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이 기업들에 가격인상 자제를 압박하는 형태의 가시적, 단기적 정책에 집중하기 보다는 식품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지원책 마련 등 균형 잡힌 정책에 초점이 맞춰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