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7월 29일(화)

"185억 주고 산 그림인데"... 17세기 루벤스 걸작 또 가짜 논란 휘말려

루벤스 명작 '삼손과 델릴라', 위작 논란 재점화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소장 중인 바로크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 작품이 또다시 위작 논란의 중심에 섰다.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1577~1640)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이 유화는 구약성경의 유명한 일화를 담고 있으며, 델릴라의 배신 장면을 강렬한 색채와 명암 대비로 표현한 작품이다. 가로 205cm, 세로 185cm 크기의 이 그림은 1609~161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사이트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 ‘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 / 영국 내셔널갤러리


18일 가디언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내셔널갤러리는 198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 작품을 250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1000만 파운드, 185억원)에 구입했다. 그러나 갤러리가 이 작품을 소장한 이후부터 진위 여부에 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의심스러운 이력과 기술적 결함


'삼손과 델릴라'는 1690년대 공식 기록에서 사라졌다가 1929년에 갑자기 재등장했다는 점이 의심을 키웠다.


당시 이 그림을 루벤스의 작품으로 감정한 독일 미술사학자 루트비히 부르하르트는 1960년 사망 후 여러 작품을 상업적 목적으로 잘못 기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뢰성에 타격을 입었다. 작품 자체에 대한 기술적 의문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미술 전문가들은 붓 터치의 조악함, 델릴라 드레스의 거친 채색, 삼손의 해부학적으로 부정확한 등 근육 표현 등을 지적하며 20세기에 제작된 모작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2021년에는 인공지능(AI) 분석 결과 91%의 확률로 위작이라는 충격적인 판정이 나오기도 했다.


인사이트페테르 파울 루벤스 / Wikipedia


더욱 의혹을 키우는 것은 작품 뒷면에 현대식 합판이 덧대어져 원작 관련 정보가 가려졌다는 점이다. 내셔널갤러리가 이 합판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구매 후 2년이 지난 1982년 이사회와 1983년 기술 보고서가 처음이었다.


내셔널갤러리가 이 합판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구매 후 2년이 지난 1982년 이사회와 1983년 기술 보고서가 처음이었다. 1990년대 전시 도록에는 "1980년 갤러리 구매 전 새로운 합판에 고정됐다"는 설명이 기재되었다.


그러나 내셔널갤러리 전 큐레이터 크리스토퍼 브라운은 최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뒷면 합판을 붙인 건 내셔널갤러리였다"고 밝혔다가, 가디언이 갤러리 측에 확인 요청을 하자 "내셔널갤러리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발언을 번복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러한 일관성 없는 설명에 루벤스 전문가들의 의문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위작 가능성을 주장해온 폴란드 출신 루벤스 전문가 카타지나 크시자구르스카 피사레크는 "내셔널갤러리는 토론 자체를 원하지 않으며, 우리가 답변할 수 없는 논지만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내셔널갤러리는 "'삼손과 델릴라'는 오랫동안 루벤스의 걸작으로 인정받아 왔으며, 가짜라고 의심하는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