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26일(목)

단순 낙서처럼 보였는데... 최태원 회장 깁스에 숨겨진 '사연'

연초 왼손에 깁스를 한 채 공식 석상에 나타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모습은 처음엔 다소 뜻밖이었다. 부상의 이유도 의외로(?) 매우 소탈했다. 아들과 테니스를 치다 공을 받으려 몸을 던졌고, 손으로 바닥을 잘못 짚으면서 다친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출장을 다녀온 뒤, 흰 붕대는 왜인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색 매직으로 쓴 글자들이 하나둘 새겨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글자의 정체는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젠슨 황 CEO가 초대한 식사 자리에서 웃고 있는 최태원 회장 / 뉴스1


복수의 SK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는 최 회장이 미국 출장 중 만난 글로벌 빅테크 최고경영자들의 서명이었다. 최 회장은 당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비롯해 혹 탄 브로드컴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과 잇달아 회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가 쾌유를 빌며 최 회장의 깁스에 사인을 남긴 것이었다.


이 장면이 의미 있었던 건, 단순한 즉석 이벤트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GTC 2026 현장에서 젠슨 황 CEO가 사인을 하려 하자, 최 회장은 별다른 설명 없이 자신의 손목 쪽을 가리켰고 황 CEO는 웃으며 반응했다.


 당시 최 회장의 깁스에는 이미 여러 서명이 남아 있었고, 앞서 두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에서도 손목 부근의 사인이 확인됐다. 최 회장이 미국에서 만난 인사들이 깁스에 사인을 남겼다는 걸 고려하면, 황 CEO 역시 사인을 해줬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더구나 황 CEO가 깁스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HBM에 곧바로 사인을 남긴 장면까지 보면, 두 사람 사이에서 '사인'은 일회성 퍼포먼스라기보다 이미 몇 차례 오간 익숙한 교감에 가까워 보인다.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협력 역시 그런 시간과 신뢰 위에서 자라난 것이라는 점을 이 장면은 보여줬다.


사진제공=SK하이닉스


HBM 시장 경쟁은 지금 속도나 물량만의 싸움이 아니다. 고객이 원하는 성능과 특성에 맞춰 함께 설계하고, 먼저 논의 테이블에 앉는 쪽이 유리해지고 있다. 그 자리에 끼려면 기술 스펙 이전에 전화 한 통 먼저 주고받는 관계가 필요하다. 최 회장이 직접 다리를 놓고 다니는 건 그래서다.


손목 부상은 개인적인 일이었다. 다만 그 위에 남은 사인들은, 반도체 수주가 어떤 경로로 만들어지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사진제공=SK하이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