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머니가 '무료 급식소'에 가져오신 컵라면이 가득 든 검은 봉지. 이 안에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도 가득 담겨 있었다.
23일 이랜드 복지재단에 따르면 얼마 전 서울역 인근 쪽방촌에 10년째 거주하고 있는 할머니가 무료 급식소 '아침애(愛) 만나'로 검은 봉지를 하나 들고 찾아왔다. 검은 봉지에는 곳곳에서 모아둔 컵라면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매일 컵라면으로 아침 먹었었는데, 이제 여기서 따뜻한 밥이랑 국을 먹으니까 나는 필요 없어. 밥 부족해서 그냥 가는 사람 있으면 이거 줘"라며 "내가 배고파봐서 알아. 진짜 필요한 사람한테 주라구"라고 신신당부했다.
할머니의 사연은 이랬다. 할머니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작은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허리 병이 깊어 졌고,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됐다.
그렇게 할머니는 가진 것을 하나 둘 정리하며 월세가 저렴한 서울역 인근 쪽방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방이라기 보다는 한 평 남짓한 공간에는 전기장판 하나와 낡은 이불이 전부였다. 창문도 없어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데다 조리시설 조차 없어 할머니는 컵라면과 빵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할머니의 이런 생활은 2024년 7월, 이랜드복지재단이 운영하는 무료급식소가 문을 열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작은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워오던 할머니는 무료 급식소에서 따뜻한 한끼를 먹을 수 있게 됐다.
할머니는 처음 급식소에 들어섯을 때 정갈하게 준비된 따뜻한 밥과 국, 그리고 웃으며 인사하는 봉사자들, 누군가를 피해 허겁지겁 먹을 필요 없이 편안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어느덧 할머니에게 무료 급식소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곳이 된 것이다.
누구보다 배고픔의 아픔을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 무료 급식소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할머니가 '컵라면 봉지'로 이를 표현한 것이다. 검은 봉지 속 컵라면 몇 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배려와 공감의 마음이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누군가를 생각하며 작은 것을 나눈 할머니의 사연이 그 어느 때보다 추운 요즘 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