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업계, 한국 약값 정책 개선 촉구
미국 제약업계가 자국 정부에 한국이 미국산 의약품의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설정해 피해를 받고 있다며 압력을 행사해 줄 것을 재차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1일(현지 시간)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미국제약협회(PhRMA)는 지난달 27일 의견서를 통해 한국이 미국 수출 의약품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해 미국에 피해를 주는 국가라고 지목했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한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더 많은 미국산 신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제약사에 지급하는 보험 급여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약국 선반에 약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 GettyimagesKorea
제약협회는 한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영국, 유럽연합(EU)을 불공정한 제약 정책과 관행이 가장 심각한 국가로 지목하며, 이 국가들이 미국에 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혁신 신약에 쓰는 비중이 훨씬 낮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무역 협상을 지렛대로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스티븐 J. 유블 PhRMA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 GettyimagesKorea
미국 제약업계는 한국 건강보험 당국이 의약품 시장 진입에 과도한 심사를 요구해 시장 진출에 장기간이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USTR에 한국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약값을 낮게 책정해 미국 제약사와 생명공학 산업이 개발한 혁신 신약을 충분히 보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3~2014년 전 세계에서 출시된 신약 500개 중 20%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으며, 신약 출시부터 건강보험공단의 급여 지급까지 평균 40개월이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협의해 건강보험 적용과 급여 지급 심사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약값을 책정할 때 사용하는 기준인 '점진적 비용-효과비율' 임계치를 업데이트하라고 권고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사진 = 인사이트
또한 미국제조업협회(NAM)는 한국, 캐나다, 유럽, 일본을 비롯해 미국 혁신 의약품의 최대 시장인 국가들이 지난 수십 년간 미국 혁신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차별적이고 불투명한 정책을 도입해 기업들이 미국 내 연구개발과 제조업 관련 일자리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약값을 책정할 때 불합리하게 낮고 낡은 비용-효과 임계치를 사용하고, 과도하고 반복적인 가격 인하를 부과해 특허약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생명공학혁신기구(BIO) 역시 한국의 약값 책정 제도가 중첩된 가격 인하 장치를 통해 품질과 공급 안정성을 우선하는 미국 제조사들의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GettyimagesKorea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과 향후 전망
이러한 상황은 지난달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과 맞물려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제약회사들이 미국 내 처방약 가격을 인하하거나 아니면 정부가 지불할 금액에 새로운 제한을 적용 받든지 선택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따르면, 미국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에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자하지만, 외국에서는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어 결국 미국이 연구개발비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 관세 부과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미국 내 최혜국대우 가격 적용에 대해서는 미국 제약업계가 투자와 신약 개발 위축을 우려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의 약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국의 불공정한 정책에 대응하는 동시에 미국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에는 다른 선진국이 지불하는 약값 중 최저 가격에 해당하는 '최혜국대우(MFN)' 가격을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은 제약사가 미국 내에서는 약값을 낮추는 대신, 한국을 비롯한 외국 시장에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