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HIV 감염 급증, 국가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 검토
필리핀에서 HIV 감염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정부가 국가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보건 당국은 올해 초 수개월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감염 속도가 서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필리핀 보건부가 4일(현지시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HIV 신규 감염 건수는 6,703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56건에 달하는 수치로,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한 수치다.
테오도로 허보사 보건부 장관은 "필리핀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HIV 감염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젊은층 감염 급증과 주요 전파 경로
신규 감염자 중 상당수가 젊은 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허보사 장관은 "15~25세 연령대의 HIV 감염 건수가 약 500%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HIV 예방 교육과 인식 개선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필리핀 보건부에 따르면 HIV 전파의 주요 경로는 성적 접촉이며, 최근 사례의 83%가 남성 간 성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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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분기에만 HIV 감염과 에이즈 발병으로 145명이 사망했다는 통계도 공개됐다.
연도별 하루 평균 신규 감염 건수는 2014년 21건에서 지난해 48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올해는 그 증가세가 더욱 가팔라졌다.
허보사 장관은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엠폭스(MPOX·옛 명칭 원숭이두창)가 아니라 HIV의 확산"이라며 국가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필리핀에서 국가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언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가장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 3월부터 2023년 7월까지 선포된 바 있다.
허보사 장관은 "HIV는 이제 더 이상 사형선고가 아니며 치료가 가능하다"며 HIV 검사, 예방, 치료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피임기구 사용과 HIV 감염 위험 감소 요법(PrEP) 등을 통해 안전한 성적 접촉을 유지할 것을 국민들에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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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의 설명에 따르면, HIV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를 의미하며, 에이즈는 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면역세포가 파괴되어 면역 기능이 저하됨으로써 발생하는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을 말한다.
HIV에 감염되면 면역세포인 CD4 양성 T-림프구가 파괴되어 면역력이 약화되고, 결국 각종 감염성 질환과 종양이 발생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HIV 초기 감염 시 조기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환자 본인도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에이즈로 진행되기 전에 치료를 시작하면 예후가 좋기 때문에, 조기 발견과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