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정자은행, 희귀암 돌연변이 가진 남성 정자 67가구에 기증
최소 67번의 정자 기증을 한 남성이 희귀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24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에 따르면 이러한 사례는 프랑스 루앙대학병원의 생물학자 에드위게 카스퍼(Edwige Kasper) 박사는 전날인 2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럽인간유전학회(ESHGE)'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최근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두 아이에게서 희귀 유전자 변이로 인한 암이 발견된 후, 이들의 부모는 각자 불임 클리닉에 관련 문의를 남겼다.
이에 자체 조사를 실시한 유럽정자은행이 동일 기증자의 정자 일부에서 TP53 유전자 변이를 뒤늦게 확인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Korea
TP53 유전자 생식세포 변이는 '리프라우메니 증후군(Li-Fraumeni syndrome)'이라는 희귀 가족성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또 유방암, 골육종, 연조직육종, 뇌종양 등 다양한 암에 걸릴 위험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이 유전자를 가진 남성의 정자로 태어난 유럽 8개국 46가구 67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23명의 어린이에게서 변이가 발견됐으며, 이 중 10명은 이미 백혈병과 비호지킨 림프종 등 암 진단을 받았다.
정자 기증을 주관한 유럽정자은행은 2008년 해당 남성이 정자를 기증했을 때 이 변이를 발견했지만, 당시에는 이 변이와 암과의 관련성이 알려지지 않아 기증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유럽정자은행의 규정 상 한 남성의 정자를 최대 75가구에 기증할 수 있긴 하지만, 정확한 자녀 수나 국적 등은 공개할 수 없다며 '최소 67번의 기증이 진행됐다'는 입장만 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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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정자은행 대변인 줄리 파울리 부츠(Julie Paulli Budtz)는 23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이번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기증자가 철저한 검사를 받았지만, 유전자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까지 감지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적으로 의무화된 정자 기증 한도 설정 논의를 환영한다"며 "이번 사례는 유럽정자은행이 기증자당 75가구에만 기증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 기준을 적극적으로 시행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유럽정자은행은 이 남성의 정자를 통해 출생한 가정에 해당 사실을 통보했다. 기증자 자녀들에게는 전신 및 뇌 MRI 검사가 권해졌다. 또 성인이 된 이후에는 유방 및 복부 초음파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카스퍼 박사는 "한 명의 기증자가 출생아 수나 가족 수에 제한을 두는 유럽의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며 "정자 기증을 통한 유전병의 비정상적 전파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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