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 89세로 별세
호세 무히카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재임하며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으로 명성을 떨쳤던 무히카 전 대통령은 식도암 투병 끝에 생을 마감했다.
GettyimagesKorea
야만두 오르시 현 우루과이 대통령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저의 동지, 무히카 전 대통령이 정말 그리울 것"이라며 "그는 대통령, 활동가, 사회의 모범, 사랑받는 어른이었다"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무히카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부터 식도암으로 투병해왔으나, 올해 1월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된 상황에서, 몸이 견디지 못할 것 같다"며 항암 치료를 포기했다. 이후 부인 루시아 토폴란스키 여사와 함께 교외 자택에서 생활하며 간간이 방문객을 맞았다.
혁명가에서 대통령으로, 무히카의 파란만장한 삶
'페페'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무히카 전 대통령은 1935년 5월 20일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다. 그는 1960~1970년대 군정에 맞서 '투파마로스'라는 좌파 무장·시위 게릴라 단체에서 활동하며 15년가량 수감생활을 했다.
사면 후 정계에 투신한 그는 좌파 성향 정당 국민참여운동(MPP)을 이끌며 국회의원과 축산농림수산부 장관을 거쳐 2009년 대선에서 승리해 2010년부터 5년간 우루과이를 이끌었다.
GettyimagesKorea
무히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우루과이 경제 발전과 빈곤 감소에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소득의 90%를 빈곤퇴치 이니셔티브에 기부하고, 1987년형 하늘색 폴크스바겐 비틀을 타고 다니는 검소한 모습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대통령 관저 대신 허름한 집에서 오랜 기간 출퇴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무히카 정부는 가톨릭 전통을 고수하던 나라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우루과이를 세계 최초로 기호용(오락용) 마리화나 완전 합법화 국가로 만들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각료 간 불협화음을 제대로 중재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시적 표현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철학자 정치인
무히카 전 대통령은 2020년 상원의원직을 사퇴하며 정계를 떠났지만, 그의 철학적 어록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삶에는 가격 라벨이 붙어 있지 않으니 나는 가난하지 않다", "권력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단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뿐", "유일하게 건강한 중독은 사랑의 중독"과 같은 그의 말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특히 임종을 앞두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기는 쉽지만, 민주주의의 기초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설파해 우루과이 여야를 막론하고 존경의 헌사를 받았다.
GettyimagesKorea
현지 일간 엘옵세르바도르는 무히카 전 대통령을 '세계의 끝에서 등장한 설교자'라고 표현하며 "무히카 행정부에 대한 국내 평가는 다소 엇갈리지만, 고인의 반소비주의적 수사와 소박한 생활은 국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으며 우루과이 정치인으로선 드물게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무히카의 별세 소식에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등 국제사회 지도자들이 애도 메시지를 보내며 고인을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