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별점, 영광인가 부담인가... 자진 반납 사례 증가
세계적인 미식 평가 안내서 '미슐랭(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유럽 일부 식당들이 '별점'을 자진 반납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슐랭 별점은 요식업계에서 최고의 영예로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식당들이 이를 거부하는 이유는 심한 압박감 때문이다.
식당이 미슐랭에 등재되면 평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고객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MICHELIN Guide
지난 21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The Guardian)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루카의 유명 레스토랑 '질리오(Giglio)'는 미슐랭 측에 자신들이 받은 별점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레스토랑의 공동 소유주인 베네데토 룰로(Benedetto Rullo)는 "미슐랭 별점을 받았다는 이유로 기교를 부린 음식이 나오는, 격식 있는 분위기의 식당을 짐작하는 손님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식당은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며 "티셔츠와 슬리퍼, 반바지 차림으로도 고급 레스토랑에 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 베이라(왼쪽) / Instagram 'marc_veyrat'
분자요리 대가로 알려진 프랑스 셰프 마크 베이라(Marc Veyrat)도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에 미슐랭 비평가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미쉐린 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강력한 의사표시로 해석된다.
또한 2011년 미슐랭 별점을 받았던 영국 런던의 레스토랑 '피터샴너서리Petersham Nurseries)'의 셰프 스카이 긴겔(Skye Gyngell)은 "미슐랭 별점이 저주가 됐다. 다시는 받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레스토랑을 떠나면서 미슐랭 가이드 등재 후 레스토랑이 너무 붐볐으며, 자신의 격식 없는 스타일과 상반되는 파인다이닝 경험을 기대하는 고객들의 불만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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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측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수년간 미슐랭은 신세대 미식가나 인플루언서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친환경적 노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식'을 실천하는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그린 스타'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가이드북 판매 저조로 인한 수익성 감소를 겪어야 했고, 결국 각국 관광 당국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음식 비평가 앤디 헤일러(Andy Hayler)는 "2016년부터 2018년 사이 미슐랭은 사업 모델을 바꿔야 했다"며 "사람들이 더 이상 인쇄된 가이드북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한국, 중국 등의 관광청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관광청 관계자들이 미슐랭에 서울 가이드 제작을 위해 140만 파운드(한화 약 26억 6,600만 원)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도 했다.
헤일러는 이러한 변화가 평가의 객관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슐랭이 관광청으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고 '미안하지만 식당이 모두 형편없으니 별을 줄 수 없다'고 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미슐랭 측은 가디언에 "레스토랑을 선정하고 별을 주는 과정엔 문제가 없다"며 "후원과 등급을 담당하는 팀은 별개"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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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슐랭 가이드는 1900년 프랑스에서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이 운전자들을 위해 처음 발행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레스토랑 평가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1~3개의 별을 부여하는 이 시스템은 셰프들에게 최고의 영예로 여겨져 왔으나,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온라인 리뷰 플랫폼의 성장과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 확대는 전통적인 미식 평가 시스템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